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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지밀 40년간 두유 1위 … 아기 살리자는 초심 덕분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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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손헌수 정식품 사장은 식품업계에선 드물게 서울대를 나와 KAIS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원 출신 경영인이다. 그는 올해를 2조원 규모인 중국 두유시장 공략의 원년으로 꼽고 있다. [안성식 기자]

‘베지밀’로 유명한 정식품의 손헌수(57) 사장은 노벨상을 받는 것이 꿈이었다. 그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사 출신이다. 정식품 중앙연구소 창립 멤버로 연구원 외길을 걸으며 1997년에는 유아식 베지밀 인펀트를 직접 개발하기도 했다. 연구원 생활 26년 만에 2008년 청주공장장으로 변신한 뒤 2011년 대표이사 부사장을 거쳐 지난해 사장으로 승진했다. 연구원에서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식품업계에서는 특히 그렇다.

 손 사장은 “제약회사 신약개발비 수준으로 투자할 정도로 연구를 중시하는 회사 분위기 덕”이라며 “중국 법인장 등 주요 임원 중에 연구원 출신이 꽤 된다”고 말했다. 그는 “애초에 베지밀 자체가 소아과 의사 출신인 정재원(96) 명예회장께서 우유·모유의 유당을 소화시키지 못해 구토·설사로 영양실조에 걸린 아기들을 살리기 위해 개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영양에 초점을 두다 보니 베지밀은 다른 두유와 달리 성분표도 복잡하다. 맛이나 보존을 위해 첨가물을 넣어서가 아니라 비타민·미네랄 등 영양 성분을 추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손 사장의 설명이다. 정부 당국의 유전자변형작물(GMO) 검사를 거친 콩도 최신 장비로 자체 검사를 한 번 더 거친다.

 손 사장은 82년 정식품에 첫 실험실이 생길 때부터 함께했다. “기업도 사회를 바꿀 수 있다. 우리 식품을 세계화해 보자”는 정 명예회장의 설득에 학교에 남으려던 계획을 접었다. 73년 선보인 국내 최초의 두유 베지밀은 40년 동안 부동의 1위다. 두유 시장이 4000억원대로 커지면서 남양·매일유업 같은 대기업도 뛰어들었지만 지금도 베지밀의 점유율은 45%다. 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조차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성장했다. 하지만 국민 건강에 기여한다는 창업 이념을 지키다 보면 사업 다각화로 몸집을 불리기가 어려웠다. 손 사장은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정공법을 택했다. 다른 사업을 벌이는 대신 지난해에만 두유 신제품 23종을 출시했다. 매출이 성큼 뛰었다. 2011년 서울 사무소도 사업의 모태였던 남대문시장 인근 ‘정 소아과’ 자리로 이전했다.

 올 상반기부터는 2조원에 이르는 중국 두유 시장에 본격적으로 도전한다. 중국 법인을 세우고 상반기에 성인용 두유를, 하반기에는 유아용 두유를 판매한다. 손 사장은 “중국은 안전한 유아식에 대한 수요가 커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소에 있던 90년대 초 중개업체를 통한 중국 진출을 담당하기도 했다. 중국으로 건너가서 상하이 푸단대 의대 소아과와 함께 두유가 모유 수준의 영양 성분이 있다는 임상 결과를 내세우며 수출을 시작했다. 중국의 소비 수준이 높지 않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당시의 경험이 이번 중국 진출의 발판이 됐다.

미국·호주·스페인·베트남 등 세계 13개국에도 아시아·히스패닉 마켓 등을 중심으로 수출이 늘고 있다.

또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커피에 우유 대신 두유를 넣는 ‘소이 라테(soy latte)’용 두유를 이디야·투썸플레이스 등 커피 전문점에 공급하고, 샤부샤부 등 요리용 두유를 내놓고 두유의 쓰임새를 확장하는 데도 집중하고 있다.

 손 사장은 “비슷한 이력의 연구원들과 반평생을 지내다가 갑자기 경영인으로 변신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며 “연구원 시절 해외 논문과 전공 자료에 경도될까봐 4년 동안 역사·경영·인문학 책을 매주 1권씩 읽고 노트에 요약과 감상을 적은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글=구희령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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