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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소금이 송골송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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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는 육로로 닿을 수 있는 섬이었다. 이웃한 지도읍 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로 섬 두어 개를 지나 증도대교를 건넜다. 부러 섬 가장 안쪽 우전해수욕장에 내려 천천히 거닐었다. 전남 신안군 증도는 2007년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총 면적 28.16㎢, 느리게 걸으면 하염없겠다고 생각하며 염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올 봄에도 전남 신안증도의 꽃소금은 화사하게 여물었다. 증도 태평염전에서 염부들이 올해 처음 나온 천일염을 부지런히 거두고 있다.

증도는 다도해에 에워싸였다. 아직은 날이 찬 3월 말, 갯벌에선 겨울잠을 덜 깬 것들이 느릿느릿 움직였다. 좀체 먹을 것을 찾기 힘든지, 저어새가 투박한 주둥이를 물속에 처박고 젓고 있었다. 짠물이 든 제방마다 칠면초·함초·세발나물의 싹 따위가 빨갛거나 파란 고개를 내밀었다. 태생이 짭짤한 염생식물이다. 이걸 한 움큼씩 뜯어다 빵을 만드는 아낙이 이웃 섬 화도에 산다고 했다. 새파란 바다를 등지고 빨랫줄엔 숭어가 구덕구덕 말라 가고 있었다. 하지만 보고 싶은 증도의 봄은 따로 있었다. 춘삼월 염전을 새하얗게 수놓는 그 아찔한 것, 바로 소금꽃.

소금 농사도 짓는 철이 따로 있어서 염부가 염전을 일구는 건 매년 3월부터 10월까지다. 이른 봄 염전에 처음 맺힌 소금 결정은, 그러니까 나름 봄의 전령인 셈이다. 봄 소금을 유독 ‘꽃소금’이라 따로 부르는 건 그런 각별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증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단일염전이 있다. 1953년 이승만 정권이 이북 피란민 구제를 위해 지은 태평염전이다. 전증도·후증도 두 섬 사이에 제방을 쌓고 만든 염전은 총 462㎡(약 140만 평), 여의도 면적의 두 배 남짓하다. 1년에 1만6000t, 하루에만 30㎏짜리 천일염 5700포대가 태평염전에서 나온다.

봄 볕에 구덕구덕 말라가는 증도 별미 숭어 건정. 생선을 천일염에 절여 햇볕에 말린 것을 증도에선 `건정`이라 한다.

천일염은 갯벌에서 거두는 것이어서 갯벌에 함유된 미네랄도 천일염에 녹아든다. 신안 갯벌은 2009년 유네스코도 세계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한 천혜의 갯벌이다. 증도 소금이 품은 미네랄은 88종이다. 특히 마그네슘은 프랑스 명품 소금 게랑드 소금보다 낫다고 인정받는다. 다 갯벌 덕이다. 증도 갯벌은 소금꽃에 가장 좋은 밭이다.

몸에 좋은 미네랄을 ‘불순물’ 취급을 해 먹을 수 없는 ‘광물’로 분류했던 시절이 천일염한테는 있었다. 5년 전 ‘식품’으로 인정받으면서 천일염은 이제 겨우 제 가치를 찾았다. 하지만 염전의 분위기는 여전히 무거웠다. 일본 원전 사고의 여파와 짠 식습관을 걱정하는 요즘 풍토 앞에서 염전은 주눅이 들어 있었다.

“원전 사고 이후 세슘 검사를 더 자주 해요. 증도는 갯벌 정화 작용이 뛰어나 그런지, 지금까지 문제없었어요. 성인병이요? 그건 염화나트륨 덩어리인 정제염에나 해당하는 얘기죠.” 태평염전 조재우(50) 상무가 손사래를 쳤다. 올해 첫 소금꽃을 피운 증도에 다녀왔다. 염전에서 자욱한 소금보다 더 아렸던 건, 사람이 만든 풍경이었다.

글=나원정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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