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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재건축, 풍수 상식을 뒤집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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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찢는 사진은 기존 상식을 뒤엎는다는 의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픽 속 아파트는 전통 풍수 상식으로는 길지(吉地)가 아니지만 현대 풍수 개념으로는 명당으로 꼽히는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

사진=김경록 기자

강남서 뒤집힌 풍수 상식

반포·잠실, 명당된 까닭은

1978년 압구정동 모습. [사진 서울시]

풍수(風水)를 사주팔자와 똑같이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우주 비행마저 현실화한 첨단 현대 시대에 정해진 명당이나 정해진 운명이 도대체 웬 말이냐는 심리의 발현일 것이다. 그러나 풍수의 본질은 운명론이 아니라 오히려 운명을 적극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최창조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등 많은 풍수 전문가가 “길지(吉地)·흉지(凶地)를 교과서적으로 따지는 풍수 근본주의에 빠지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다. 지기(地氣), 즉 땅의 기운을 받을 수 없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또 그 고층 아파트를 밀어내고 더 높은 초고층 아파트로 재건축하는 오늘날에도 풍수가 유용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른바 이론 풍수에선 흉지지만 값비싼 현대 도시 명당으로 다시 태어난 많은 아파트 단지가 이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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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신공(奪神工) 개천명(改天命)

해석하면, 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빼앗아 하늘이 정한 운명을 바꾼다는 뜻이다. 자연의 이치를 거역할 수 없지만 풍수만은 이런 천지 조화에서 벗어나 하늘이 정해놓은 명운마저 바꿀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 동진 시대의 곽박(郭璞)이 쓴 풍수서『장서(葬書)』(일명 『금낭경(錦囊經)』)에 나오는 말로, 흔히 풍수의 제1원칙으로 받아들여진다.

 최 전 교수는 “일부 풍수가는 자연을 건드리지 말라고 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풍수를 구지법(求地法·땅을 구하는 방법)이라 부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객관적이고 정해진 명당은 없다”고 말했다. 명당은 자연 그대로 방치된 상태에서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게 아니라 인공을 써서라도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국 특유의 비보(裨補) 풍수 역시 이런 시각을 깔고 있다. 땅에 결함이 있다면 비보(도움)가 필요한 자리를 정하고 조치를 취해 나쁜 것을 막아준다는 것인데, 터의 좋고 나쁨을 차별하지 않고 상대적인 걸 중시하는 한국식 풍수 전통을 잘 드러낸다.

 이런 해석을 염두에 둔다면 과연 배산임수(背山臨水)라든지, 금성수(金星水)라는 식의 지극히 상식적인 명당의 조건이 과연 현대 도시에서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 걸까. 또 반궁수(反弓水·강 흐름이 활처럼 휘어져 땅이 움푹 들어온 곳) 등 이른바 흉지는 현대에 이르러 과연 명당으로 탈바꿈할 수는 있을까. 그리고 건물을 허물어내고 새로 올리는 재건축은 과연 풍수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을 풍수 키워드 중심으로 살펴봤다. 그랬더니 특히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지역 아파트 단지에서는 이런 상식이 뒤집힌 곳이 적지 않았다.

一. 배산임수 vs 배수임산

강남 한강변 아파트는 지역 불문하고 대부분 풍수 상식과 정반대로 지어졌다. 풍수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꼽히는 배산임수, 즉 산을 뒤에 두고 물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거꾸로 한강을 북쪽에 두고 대모산·우면산 등 산을 남쪽에 둔 배수임산(背水臨山)이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도 아는 풍수의 기초부터 어긋난 셈이다.

 최 전 교수는 “예부터 햇볕 많이 받고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는 남향집, 동향 대문 집을 최고 명당으로 봤다”며 “오죽하면 3대가 덕을 쌓아야 얻을 수 있는 곳이라는 말이 나왔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이론일 뿐이다.

 신현성 기풍수지리학회장은 “풍수는 자연을 부리는 기술”이라며 “산이 동쪽이면 집은 서향, 산이 남쪽이면 집을 북향으로 지으면 된다”고 말했다.

 박시익 명당건축사사무소 대표도 “남향집에 대한 집착은 잘못된 풍수 상식에서 기인한다”며 “개인적으로 최고의 명당은 북향집인 전북 고창에 있는 인촌 김성수 생가”라고 말했다. 이정암 도선풍수명리학회장도 “가끔 강남의 일부 아파트가 무리하게 남향을 고집해 강을 뒤에 두고 산을 앞에 두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풍수에서 가장 피하는 배수진 입지”라고 말했다. 그는 “풍수가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해도 무턱댄 욕심은 오히려 화만 부른다”며 “배수진을 친 건물은 재물운이 약해진다”고 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에게 풍수 등을 조언하는 것으로 알려진 임경택 전 목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인간이 땅을 바꿀 수는 없다”며 “터의 전제조건을 인정하고 다른 조건을 좋은 쪽으로 맞춰가면 된다”고 말했다

二. 반궁수 vs 연화반개형

강의 흐름은 명당이냐 아니냐를 가늠하는 주요한 요소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강남 내에서 특히 명당으로 꼽히는 이유도 한강을 향해 툭 튀어나온 금성수 지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움푹 들어간 반궁수 지형은 어떨까. 이론 풍수에서는 분명 길지는 아니다. 한 풍수 전문가는 “화살이 나를 향하는 것처름 위험하다”고 말했다. 고제희 대동풍수학회장도 한 책을 인용하며 “반궁수가 지나가면 재산이 빈해진다는 얘기도 있다”고 에둘러 말했다.

 그런데 강남3구에서 대표적인 반궁수 지역으로 일컬어지는 서초구 반포동 주공 1단지는 최근 재건축 기대감이 맞물려 평(3.3㎡)당 평균 가격이 4900만원까지 치솟아 집값 비싼 강남 지역 내에서도 최고가에 해당한다. 강에서 좀 더 떨어진 지역이기는 하지만 주공 반포 2단지 자리에 재건축한 래미안 퍼스티지 역시 큰 범주에서 반궁수에 속한다. 그러나 살고 싶어하는 최고급 아파트인 건 역시 마찬가지다. 반포동은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3500만원으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등 전통적인 고가 아파트가 있는 압구정동을 제치고 부동산값 왕좌에 오르기도 했다.

 양만열 동방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강남 3구 명당 아파트로 “래미안 퍼스티지와 3단지를 재건축한 반포 자이를 꼽기도 했다. 그는 “래미안 퍼스티지는 움푹 파인 곳에 위치해 있지만 단지 앞에 반포천이 흘러 물 기운(재물운)을 끌어들인다”며 “꽃이 절반쯤 핀 이른바 연화반개형(蓮花半開形) 명당”이라고 말했다. 절반의 명당이라는 이야기다.

三. 지기 vs 양기

조선 때 지은 역사서 『고려사』의 한 토막. 고려 충렬왕 때다. 왕이 나라 위신을 높이겠다며 높은 누각을 세우겠다고 하자 천문·역학 등을 다루던 관서인 관후서가 반대했다. 중국 풍수를 들여온 신라 승려 도선이 지은 『도선밀기』를 인용해 “높은 집을 지으면 쇠락한다”는 이유였다. 산 같은 높은 지대는 양(陽)의 기운을 갖는데 높은 건물을 지어 양의 기운을 더 얹으면 풍수상 맞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원칙은 조선 때까지 그대로 내려왔다.

 심승희 청주교대 사회화교육과 부교수의『서울 스토리』를 봐도 우리나라 주택은 근대 이전까지 농촌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대부분 단층 형태였다. 심 교수는 책에서 “2층 이상은 온돌 설치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며 “우리나라는 산지가 많아 수평적인 건물이 음양 조화에 맞기 때문이라는 풍수지리적 설명도 있다”고 설명했다.

인근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2층 이상의 전통 주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유독 단층 주택을 고집해 온 우리 역사에 비추어 보면 아파트 문화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풍수 측면에서 보면 완전히 상식을 벗어나는 선택이다.

 그럼에도 1970년대 본격적인 강남 개발과 함께 모두가 아파트를 열망하게 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적 지위를 높여줬기 때문이다. 운 좋게 분양만 받으면 날이 갈수록 껑충 뛰는 부동산 가격 덕에 월급통장만으로는 가질 수 없는 부(富)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어진 지 20~30년 지나 노후한 아파트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도 똑같다. 재건축되면 평(3.3㎡)수가 넓어지고 아파트 값이 뛰어 돈도 벌 거라는 기대감이 풍수 상식을 눌러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고층 재건축 아파트는 정말 풍수로는 잘못된 선택인 걸까.

 강환웅 대한풍수지리학회장은 “지구는 거대한 자석이라 땅에 자기가 흐르는데 이를 가우스(Gauss)라고 한다”며 “사람은 자기를 받아야 하는데 지표에서 4층 높이만 올라가도 반감되므로 고층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높을수록 값이 비싸지는 로열층이 풍수 면에서는 흉지에 가깝다는 말이다. 그러나 최 전 교수는 “하늘의 기운도 있다”며 “하늘의 기운을 잘 받는 층이 로열층”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사람에 따라 누구는 땅의 기운을 더 받고, 또 다른 누구는 하늘의 기운을 더 받는다”며 “고층이나 저층에 거주하는 건 순전히 사람의 취향 문제”라고도 덧붙였다.

글=안혜리·유성운·조한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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