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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간 지지부진 한국형 전투기 사업(KFX)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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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전투기사업(KFX)은 1999년 4월 항공우주산업개발계획을 통해 공식화됐다. 미래 공군 전력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었다. 2020~2050년 운용할 공군 전투기로 ▶하이급인 신형 스텔스기와 F-15K ▶미디엄급인 국산 KFX 100~200 기 ▶국내 생산 중인 FA-50 등 400여 대로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그중 F-15K 60대는 완료됐다. FA-50도 착착 생산 중이다. 스텔스기를 해외 도입하는 FX사업은 현재 미국의 F-35, F-15SE, 유로 파이터 3기에 대한 기종 선정 단계에 들어가 있다. 유독 KFX만 요원하다. 14년이 지나도록 지지부진한 KFX의 실태를 취재했다.

2001년 3월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장. 집권 4년차인 김대중 대통령은 “늦어도 2015년까지 최신예 국산 전투기를 개발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런데 12년 지난 2013년 4월10일 강원도 정선의 하이원 리조트 컨벤션 호텔, 한국 국방안보포럼(KODEF)과 한국항공우주학회가 공동주최하는 국산 전투기 개발 세미나의 주제는 여전히 ‘KFX, 이제는 결정해야 한다’였다. 이에 앞서 1월 28일에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이 주최하는 KFX 세미나가 열렸지만 취지는 ‘KFX사업이 제대로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발표 이후 KFX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002년 11월 국방부 합동참모회의는 ‘정부 주도로 2017~2021년 수백 대 규모의 미디엄급 항공기를 개발한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정부는 2005년, 2007년, 2009년, 2010년, 2012년에 걸쳐 대만의 IDF, 미국의 록히드 마틴, 보잉, EADS(유럽 컨소시엄), 사브 등 독자 전투기를 제작하는 주요 항공업체에 전문가를 보내 연구하도록 예산을 지원했다.

공군이 구상하는 KFX는 2020년 이후 허리 역할을 하는 다용도 전투기다. 현재 운용 중인 F-16의 성능을 향상해 생존성·작전성을 높인다. 고성능 AESA 레이더와 통합형 항전장비 같은 최신 전자장비를 갖춰 F-18C나 라팔 체급의 미래형 전투기를 만든다는 것이다. 사업비는 ▶개발비 약 6조원 ▶양산비 8조~11조원 ▶30년간 운용유지비 9조~17조원으로 구성될 것으로 추정된다. 수출도 계획한다. 23조~34조원이 전투기 국산화 사업에 투입되면 ▶항공기술 발전 ▶경제 효과 ▶일자리 창출의 선순환 구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결정을 미루고 이명박 정부가 시작되면서 난기류에 휘말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06년 12월~2008년 2월 사업평가를 한 뒤 ‘타당성 없음’이란 보고서를 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타당성 미흡’(2003년), ‘타당성 미판단’(2006년)이란 평가보고서를 냈지만 이는 ‘해야 하지만 기술력이 문제’라는 걱정을 담은 것이었다.

이 상황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KDI가 과도한 조건으로 타당성을 평가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만이 가능한 ▶스텔스 기능 ▶초음속 순항을 평가 항목에 넣고 이를 전제로 결론을 내렸는데 한국 공군은 그에 못 미치는 4.5세대의 ROC(작전요구성능)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공군은 항의했지만 당시 기획예산처는 KDI 보고서를 근거로 사업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KFX는 퇴출되는 듯하다 2009년 건국대 무기연구소가 ‘타당성이 있다’는 결론을 발표하면서 겨우 살아났다. 정부는 2011년 2년간의 탐색개발을 결정했다. 탐색개발은 실제 사업에 들어가는 기술을 확인하고 기본설계를 해 보는 것이다.

이에 인도네시아가 들어왔고 2012년 말까지 한국 440억원, 인도네시아 110억원를 투입해 탐색개발이 진행됐다. 유럽 스타일의 C203, 미국 스타일의 C103이라는 기체 디자인도 나왔다. 사업은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주도하고 방위사업청·공군·인도네시아 관계자 195명이 참여했다. 독자 개발에 필요한 432개 기술을 전문가 집단 126명이 분석하고 개발계획을 세우며 경제성을 분석했다. 2012년 12월 ADD는 ‘6조원을 들이면 독자 개발이 가능하며 19조원의 산업 파급효과, 41조원의 기술 파급효과, 4만~9만 명 고용효과가 있고 최대 700대까지 수출 가능하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건국대 무기연구소도 2012년 9월 ‘독자 개발 가능, 산업·기술 파급 효과 47조원, 4만9000명 고용효과’를 내용으로 하는 보고서를 냈다. 이 정도면 정부가 사업을 본격화할 만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기획재정부는 2013년 KFX 예산 가운데 사업 타당성 조사 예산의 일부인 45억원만 남기고 전액 삭감했다. 재정부의 결정에는 2012년 하반기 KIDA가 발표한 반대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게 공군의 의견이다. 공군 관계자는 “정확한 분석도 없이 ‘카더라’가 많은 이 보고서는 논란을 일으켰지만 재정부가 이를 구실로 예산을 없앴다”고 의심했다. ‘2013년 사업 본격 시작, 2020년대 초 개발 완료’라는 계획은 멈췄다. 공군 관계자는 “대통령이 결정한 사업이 이처럼 오래 본궤도에 오르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재정부·KIDA와 공군·ADD·건대의 타당성 논쟁은 자료 조사 방법에 대한 감정싸움으로 번져간다. 찬성 측 관계자는 “우리의 분석 문서는 1640쪽이 넘는데 반대하는 KIDA 문서는 보잉과 록히드가 간략하게 보낸 RFI(정보 제공 문서)일 뿐”이라고 한다. 세종대 이경태 교수는 지난 1월 28일 세미나에서 “반대 측은 미흡한 국내 기술력으로 신규개발을 한답시고 돈을 쓰지 말고 미국제 항공기를 들여다 개조해 쓰는 게 리스크도 없고 경제적이라는 얘기”라며 힐난했다. 한 공군 관계자는 “KIDA의 반대는 무기 개발의 경제논리만을 적용하는 개인의 논리에 너무 의존하고 패배주의적 발상”이라고 흥분한다. 정부는 올해 또 사업평가를 한다. KFX는 길을 잃었다.

국제 갈등도 끼어있다. 인도네시아와 터키는 재정부가 ‘2개국 이상의 공동개발국 참여와 일정 수량의 구매 약속’을 요구해 참여하게 됐다. 한국이 구상하는 지분 구조는 ‘국방부 3조원, 지식경제부 6000억원, 인도네시아 1조2000억원(20%), 제3국 1조2000억원’이다. 인도네시아는 이를 수락했지만 터키는 30%를 요구, 사업에 갈등 요소가 추가됐다. 정부 관계자는 “인도네시아에 ‘내부 의사결정 문제로 체계개발 시작을 일 년 반 연기한다’고 통보한 상태”라고 말했다. 터키는 입장을 검토 중이다.

이런 상황은 공군력 약화로 이어진다. 공군 송택환(준장) 전력기획참모부 차장은 “2010년대 후반엔 시제기가 나와야 했는데 사업이 지연돼 2013~2028년 15년 동안 목표 전투기 대수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럴 경우 전쟁이 발발하면 위험하다. 다른 공군 관계자는 “한·미 연합작전에 따르면 양국은 각각 역할을 해야 하는데 한국에 전투기가 부족하면 작전에 차질이 생긴다”며 “이를 메우려고 한국이 노후 전투기를 무리하게 투입하면 사고 위험이 크고 노후기를 계속 운영하는 데 따른 유지비도 커진다”고 말했다.

KFX는 미사일 개발에도 필요하다. 육군은 현무-2 탄도미사일, 현무-3 순항미사일을, 해군은 해성-3 순항미사일을 국산화해 실전 배치했지만 공군은 그렇지 못하다. 비싼 정밀타격무기(SLAM-ER)를 소량 구매하거나, 신형 공대지 순항미사일을 구입하려 하지만 난항이다. 합동직격탄(JDAM)은 제조사에 KF-16 장착을 의뢰하자 400억원을 요구했지만 공군 소프트웨어 연구소가 100억원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ADD가 국산화한 한국형 정밀유도폭탄(KGGB)은 그렇게 못한다. 그래서 국산 F-5 조종사에 별도 PDA 장비를 지급해 허벅지에 달고 비행한다. 공군 86항공전자정비창 이문수 창장은 “미국에 국산 미사일 장착을 요구하면 소스 코드의 비밀을 다 알려줘 우리 기술이 다 나가게 돼 문제”라고 말한다.

안성규 기자, 김병기 객원 기자 ask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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