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조선 자율협약안 채권단이 받아들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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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조선해양이 이달 초 자금 수혈을 주 내용으로 채권단에 신청한 자율협약체결 요청이 8일 받아들여졌다. 이에 따라 STX조선은 금융권으로부터 긴급자금을 지원받게 돼 위기를 넘기고 활로를 모색할 수 있게 됐다. 이날 STX조선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따르면 8개 채권기관이 자율협약체결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서면동의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일단 9일 만기가 돌아오는 1043억원의 회사채 상환자금부터 긴급 지원한 뒤 이번 주 중 2차 채권단회의를 열어 실사계획을 논의할 방침이다.

 채권단은 앞으로 채권단협의회를 정식으로 구성해 2~3개월간 STX조선을 실사한 뒤 구조조정 방안과 추가 긴급자금 지원 규모를 결정하게 된다. 채권단 관계자는 “STX조선의 수주잔고가 159억 달러에 달하고 앞으로 조선업계 업황이 호전될 기미를 보인다는 점 등을 감안해 거의 만장일치로 자율협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했다”며 “좋은 기업이 일시적인 자금난 때문에 무너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자율협약은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로 흑자 부도 위기에 처한 기업이 자구 노력을 전제로 채권단으로부터 채무 유예나 자금 지원을 받는 협약이다. 법에 따라 진행되는 법정관리나 워크아웃보다 강제성은 약하지만, 계열사 매각 등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STX조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력인 조선·해운업이 침체에 빠지면서 자금 사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STX그룹 차원에서 지난해 해외 자회사인 STX OSV를 팔고, STX에너지의 일부 지분을 매각해 1조1300억원대의 현금을 마련했지만 자금난이 쉽게 해소되진 않았다. STX조선은 3만5000여 명의 직원들과 1400여 개 협력업체에 근무하는 근로자 6만여 명의 고용안정을 위해 지난 2일 채권단에 자율협약체결 신청을 했다.

 자율협약 수용으로 STX조선은 회생 노력에 한층 가속도가 붙게 됐다. 특히 STX그룹의 최대 채권자인 산업은행이 한 차례 공개매각이 무산된 해운 자회사, STX팬오션을 인수할 뜻을 보인 것도 긍정적인 신호다. STX그룹은 유동성 해소를 위해 STX팬오션 매각을 추진 중이며 산은은 STX팬오션의 2대 주주로 이미 지분 14.99%를 보유 중이다.

 산업은행은 지난 5일 STX그룹으로부터 STX팬오션 인수검토 요청을 받았으며 이후 회계법인과 법무법인 등 인수 자문기관들과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인수 적정성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TF팀은 8일부터 한 달간 STX팬오션을 예비실사한 뒤 인수 필요성이 있다고 결론날 경우 2~3개월의 본실사 과정에 착수하게 된다. 본계약 성사 여부는 7~8월께 결정될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산업은행이 STX팬오션 인수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어 인수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STX는 또 그룹 차원에서 중국 내 조선소인 STX다롄에 일부 자본을 유치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때마침 조선업황이 다소 호전될 기미를 보이는 것도 반가운 소식이다. STX조선은 8일 캐나다 선사인 티케이탱커스로부터 11만3000DWT(재화중량t수)급 탱커(유조선) 4척을 약 1916억원에 수주했다. 이번 계약은 같은 급의 탱커 12척에 대한 옵션을 포함하고 있어서 옵션까지 발효되면 수주액은 8000억원으로 늘어난다. 이 선박들은 진해조선소에서 건조해 오는 2015년 하반기부터 순차적으로 인도할 예정이다. 이들 선박은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연비제조지수와 탄소배출규제에 부합하며 연료 효율성이 입증된 G-타입 엔진과 신형 프로펠러가 탑재된다. STX조선은 이에 앞서 지난 3월 말 덴마크 선사 노든으로부터 5만DWT급 탱커 4척에 대한 1400억원 규모의 건조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 계약 역시 4척의 옵션을 포함하고 있어 모두 발주되면 총 2800억원 규모의 대형 계약이다.

 STX조선 측은 잇따른 희소식에 고무된 분위기다. STX조선은 그동안 일시적인 자금난 때문에 해외 영업에 지장이 초래돼 수주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해왔다. STX조선 관계자는 “선박 가격이 점진적으로 회복세를 보이는 등 조선업종의 오랜 불황이 개선되고 있는 국면이라 자율협약체결 소식이 큰 힘이 된다”며 “자금 사정만 해결된다면 당당하게 해외 경쟁에 동참해 수주를 늘려 STX조선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석·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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