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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 중앙통신 부사장| 이수근씨 극적 귀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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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2일 하오 북괴 관영 중앙통신 부사장이 판문점에서 북괴를 극적으로 탈출하여 자유를 찾아 서울에 왔다. 제2백42차 군사정전위 본회의가 끝난 22일 하오 5시 23분 북괴의 관영 조선중앙통신 부사장 이수근 (44)씨가 회의를 마치고 막 떠나려는 「유엔」측 영국 대표 「밴크로프트」준장의 전용차에 뛰어들어 극적인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이 씨가 「밴크로프트」준장의 차에 뛰어들고 차가 질주하자 당황한 북괴 경비병들이 뒤따르며 백여 발의 권총을 발사하며 뒤따랐고 북괴의 초소는 교통 차단봉을 내리기까지 했으나 「세단」차는 차단봉을 박차고 쾌속으로 내달아 완충 지대 남쪽에 있는 판문점 지원부대에 도착, 강서룡 국방차관의 마중을 받았다. 【관계 기사 7면】

<탈출 경위>
22일의 제 2백 42차 정전위 본회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상오 11시부터 북괴의 궤변 속에서 열띤 논쟁이 계속되었다.

<연락은 「낙서」하듯>
이 날 하오 4시 30분쯤 3년전 부터 드문드문 판문점에 나왔던 이수근 씨는 본회의장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유엔」측 직원 이모 씨에게 탈출할 뜻을 은근히 비쳤다. 이 씨는 즉각 「유엔」측 비서장 「찰튼」미군 대령에게 연락, 「찰튼」대령이 쪽지로 회의장 안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는 「유엔」측 수석 대표 「치콜렐러」소장에게 전했다. 「치콜렐러」소장은 말을 짧게 끝내고 공산측 대표가 떠드는 틈에 신문지 위에 낙서를 하는 시늉을 하며 이 사실을 적어 옆자리의 한국군 수석 대표 남철 해군 소장에게 알렸다.

<눈치챌까봐 연극도>
남철 소장은 시치미를 떼고 심각한 표정은 짓지 않앗다. 농담을 하듯 미소를 짓기도 하고 어깨를 툭툭치며 장난을 하듯 가볍게 주고 받았다. 바로 건너편에 앉아 지켜 보고 있는 공산측 대표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였다.
남철 소장을 통해 이 씨의 탈출을 도와 주라는 명령이 밖으로 새어 나갈 때 공산측은 무언가 눈치를 채고 있었던 듯 싶었다고 남철 소장은 말했다.
갑자기 회의장 안이 긴장에 싸였고 북괴 대표 한주경 대령이 무언가 지시를 하자 회의장 밖의 북괴 경비병들은 수가 부쩍 늘어났다.
이윽고 하오 5시23분 본회의가 끝나고 대표들이 밖으로 나오자 모든 사람의 시선은 「치콜렐러」소장 쪽으로 쏠렸다. 「치콜렐러」소장 전용차의 바로 앞에 세워둔 「세단」차에 이수근 씨가 전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차는 USASG 104. 영국 무관 「밴크로프트」준장과 한국 공군의 이연수 준장이 탈 차였지만 차속에는 미군「톰슨」중령 (판문점 전진기지 경비 책임자)과 운전병 「맥넬리」기술 상병만이 발동을 걸어 두고 대기 중이었다.

<날아온 총알 백 50발>
순간적으로 차에 뛰어든 이 씨를 목격한 북괴 경비병들은 미칠 듯이 고함을 지르며 차문을 열려고 했으나 옆에 있던 기골이 장대한 미군 「베어」대위 (판문점 경비사 작전관)에 두어번 얻어맞고 물러났다.
그러나 2백 「미터」거리의 북괴군 차단기 부근에 이르자 총을 쏘기 시작, 차가 차단기를 부수고 전속 남진을 계속하자 20여명의 북괴 경비병들은 탄환이 있는 대로 권총을 쏘아댔다. 적어도 1백 50발을 넘겨 쏘았다. 그래도 한사람의 인명 피해도 없었다.
북괴 경비병들은 다른 기자들의 동태는 감시하면서도 거물급인 이수근 씨에게는 주의를 소홀히 하고 있어 이 씨가 손쉽게 탈출할 수 있었다고 목격자들은 말하고 있다.
차단기를 부술 때 앞자리의 오른쪽 문이 깨지는 바람에 「톰슨」중령의 입언저리가 약간 상처를 입었을 뿐 뒷 자리에 몸을 수그리고 앉아있던 이수근 씨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이수근 씨는 「캠프」안에서 「치콜렐러」소장과 남철 소장에게 소개되었다.
그러나 대화는 짧았다. 『이름이 뭐요』(남철 소장) 『이수근입니다. 조선중앙통신 부사장입니다』『당신을 환영한다』는 「치콜렐러」소장에게 이 씨는 『신변을 보호해 달라. 나는 저쪽 제도가 싫어서 온 사람이다. 김일성은 오늘 밤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고 몹시 흥분한 어조로 짧게 말했다.

<「헬」기로 도착·곧 건강 진단 구면 기자들과 감격의 악수 - "아픈덴 없으나 몹시 피로">
서울의 첫밤
이날 하오 7시15분 이 씨는 「헬리콥터」으로 8군 「헬리·포트」에 도착, 「치콜렐러」소장과 남철 소장의 안내로 내렸다.
이 자리에는 강서룡 국방차관이 마중나와 이 씨와 환영의 악수를 나누었다.
이 씨는 「플래쉬」를 터뜨리는 기자들과 구면이어서 많은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이 씨는 곧 미 8군 본부 병원 제 7호 진료실에서 간단한 진단을 받았다.
7호 진료실에서 『아픈데는 없고 몹시 피로하다』고 말하고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다음에 천천히 다 이야기 합시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 씨가 극도의 긴장으로 얼굴이 창백하기 때문에 혈압을 재고 진정제 주사를 맞았다.
이 씨는 시종 미소를 잃지 않고 침착하게 보였으나 혈압이 2백 가까이 오르고 있었다.
하오 8시 10분 8군 병원을 나온 이 씨는 병원문 앞에서 강 차관과 다시 악수를 나누고 서울 자 7361호 새나라를 타고 한남동∼남산∼남대문∼을지로∼왕십리∼신설동을 달리며 「네온」이 찬란한 서울 거리를 감격스럽게 바라 보면서 「드라이브」를 즐기고 모처에서 서울의 첫밤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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