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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빌 게이츠는 왜 240 억달러를 내놨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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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아메리칸 에어라인 657편은 뉴욕에서 아이티까지 가는 데 단 네시간 걸린다. 이 노선은 평일 오전에는 대체로 만원이다. 그러나 몇몇 선교사를 제외하면 북미인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美 국무부의 온라인 관광안내문을 보면 그 나라에 가고 싶은 생각이 별로 안든다. “아이티에는 ‘안전지대’가 없다”고 한다. “가뜩이나 문제인 범죄가 증가하는 추세다.

무장강도·무단침입·유괴·살인·차량납치의 보도가 더욱 늘어난다. 경찰 장비는 형편없으며 지원요청에 신속히 응할 능력이 없다. 근년 들어 미국인들을 납치해 총을 쏴서 불구로 만들거나 살해하는 사건이 몇차례 일어났다.”

설령 범죄자를 만나지 않더라도 다음에는 군중을 피해야 한다고 안내문은 경고한다. 외세개입 반대를 부르짖는 시위가 잦고 정부는 폭력상황을 통제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포르토프랭스 공항에 있는 사람들은 별로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다. 폭염에도 불구하고 축제 분위기다. 아이티 인구는 8백만명이지만 모든 국민이 서로 다 알고 지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공항의 한 벽면에는 ‘이런 꼴로 손님을 맞이해 죄송합니다. 손님을 좀더 편안하게 모실 수 있도록 노력중입니다’라는 대형 광고판이 걸려 있다. 공항 밖의 군중은 정글칼 대신 아기와 성경책을 안고 있다. 대부분이 먹고 살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한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포르토프랭스의 관문인 시테 솔레유는 약 70평방km의 빈민가다. 어림잡아 1백만명이 수도와 전기 또는 제대로 된 지붕도 없는 판잣집에서 산다. 시내를 지나 교외 언덕지대로 갈수록 생활수준은 조금씩 나아진다.

그러나 번화가에서조차 전기 구경을 하기가 어렵다. 도로에 산더미같이 쌓인 쓰레기더미가 연기를 내뿜고 폐차들이 담장으로 쓰인다. 아이티 국민 1인의 하루 수입은 1.26달러이고 보건 지출은 연 평균 16달러다. 어린이 9명 중 1명꼴로 취학연령 전에 사망한다. ‘사 푼 페?’(우리보고 어쩌라고)라는 댄스곡이 인기다.

미국 워싱턴州 레드먼드로 가보자. 캐주얼차림의 마이크로소프트(MS)社 간부들이 빌 게이츠 회장 사무실 맞은편에 있는 한 소회의실에 앉아 있다. 그들은 몇분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지금 게이츠는 포르토프랭스 시민들과 같은 질문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세계 최고의 부자로서는 그냥 해보는 질문이 아니다. 게이츠는 아마 아이티를 통째로 살 수도 있겠지만 특정국가를 살릴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목표는 세계의 빈국과 부국을 갈라놓는 가장 기본적 격차인 보건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그는 목표보다는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어떤 일화보다는 숫자에 더 관심을 갖는 것 같다. 그는 그 숫자들을 훤히 꿰고 있다. 적은 돈으로 예방·치료할 수 있는 전염병 때문에 매년 1천1백만명이 사망한다. 페니실린 같은 값싼 기본약품을 접할 수 없는 사람이 20억명이다. 미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80세에 육박하는데 비해 50세에 미치지 못하는 나라도 27개국이다.

게이츠 같은 사람에게 이는 단지 분노의 대상이 아니라 기회다. 몇해 전 그가 부인 멜린다와 함께 설립한 재단은 이제 역사상 최대규모가 됐다. 자산이 2백40억달러가 넘는다. 주력분야는 보건이다. 이 재단은 모든 점에서 인습과는 거리가 멀다.

게이츠는 재단 일을 이사회에 맡기지 않고 대신 자기 아버지와 오랜 친구에게 일임했다. 그리고 신화가 되다시피한 자신의 사업감각을 발휘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자선사업 모델을 창출했다. 목표 달성을 위해 지원금 대신 지렛대 효과를 이용하는 기업가형 모델을 만든 것이다.

게이츠의 의식구조나 경영방식을 연구한 사람에게는 이미 익숙한 전략일 것이다. 게이츠는 20대 때 컴퓨터 제조업체들에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를 공여하고 방대한 새 PC 시장을 개척하도록 도움으로써 자사 소프트웨어의 영향력을 늘리는 방법을 통해 MS를 대기업으로 키웠다.

30대 때는 운영체제의 독점을 악용해 자사의 다른 제품들이 부당이득을 취하도록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제 40대가 된 게이츠는 자선사업 기금으로 최대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 유사한 전략을 쓰고 있다.

게이츠 재단은 정부나 기타 비영리기관이 대등한 수준의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조건이 있어야만 보조금을 지급하고, 수혜자에게 목표 달성을 요구한다. 그러지 않으면 지원이 끊길 수 있다(그런 살벌한 방식은 일부 자선단체들의 비판을 받는다. 사람들에게 높은 기준에 맞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레드먼드에서나 통하지 문맹자가 수백만명인 곳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전문가들은 보건향상 그 자체가 최빈국에서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낸다고 추정했다. 자식이 일찍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선 부모는 저금을 더 하고 아이를 적게 낳는다. 그러면 투자자본 창출에 도움이 되고 그것이 발전을 부르는 ‘선순환 고리’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최근 완공된 게이츠 재단의 시애틀 본부에 들어서면 이내 ‘벤처 자선사업’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건물 밖에는 번지 수만 있을 뿐 번듯한 명패도 없다. 건물 내부는 전체적으로 간결하다. 복도에서는 하급직원들이 상관이나 세계 보건 전문가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이 건물에서 유일하게 넥타이를 맨 사람은 이 재단의 세계 보건 프로그램을 감독하는 의사 겸 가족계획 전문가 고든 퍼킨 박사다. 키가 2m가 넘는 빌 게이츠 2세(빌 게이츠의 부친)는 은퇴한 변호사로 현재 재단의 운영책임을 맡고 있다. 그와 함께 재단의 공동 이사장직을 맡은 MS 간부 출신의 패티 스톤사이퍼는 50세도 안됐지만 봉급 한푼 안받고 풀타임으로 일한다. 먹고 살 돈은 MS 주식을 팔아 이미 벌어놓았다.

재단의 직원은 2백16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재단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들은 프로젝트 하나에 그들을 전원 투입해야 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주요 보건과제로는 임신·출산 과정에서 사망하는 여성의 비율이 미국의 2백배에 이르는 빈국의 임산부 사망률을 줄이려는 운동이 있다.

또 74개국 어린이들에게 통상적 백신 접종을 확산시키려는 운동, 개도국들에 새 백신을 신속히 보급하려는 운동, 그리고 에이즈와 말라리아 예방백신을 최초로 개발하려는 노력 등이 있다.

빌 게이츠는 어쩌다가 그토록 세계보건에 헌신하게 됐는가. MS 제국을 건설한 냉철한 이 컴퓨터 천재가 제3세계 부녀자들의 곤궁에 그렇게 큰 관심을 쏟는 것을 보며 많은 사람이 의심을 품지는 않을망정 놀란다.

미국 정부와 MS의 반독점 소송사건 때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자선행위를 시작했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소송이 끝난 시점에서도 그의 결심은 바뀌지 않았다.

가족과 친구들은 게이츠의 새 사명이 실은 전부터 늘 그 자리에 있었던 두가지의 연장이라고 말했다. 그 두가지란 자선행위에 관심을 보여온 집안의 오랜 내력과, 큰 이익이 걸린 투자와 문제해결에 대한 그 자신의 열정이다.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 MS가 초대형 기업이 되면서 사회에 뭔가를 돌려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압박감이 매우 컸다.

그러나 젊은 게이츠는 그것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훌륭한 시민의 입장에서 뭔가 적당한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압력을 우리 내외가 늘 가했다”고 그의 아버지는 회상했다.

빌 게이츠 2세는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메리 맥스웰과 함께 시애틀 지역의 유명한 시민운동가였다. “그럴 때마다 똑같은 대답을 들었다. ‘어머니, 어머니. 저는 회사를 경영해야 해요. 제가 지역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사업을 성공시키는 거라구요.’” 도움을 호소하는 편지에 답장하지 않는 경우가 늘면서 걱정된 아버지는 마침내 편지에 답장 보내는 일을 맡겠다고 자청했다.

잡일에 불과했던 그것이 1994년께는 풀타임 업무로 확대됐다. 게이츠 2세는 아예 재단을 설립해 자선행위를 본격적으로 하자고 아들 부부를 설득했다.

그와 스톤사이퍼는 공동 이사장으로 들어앉고 아들 부부를 정기적으로 만나 자선행위의 가능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9천4백만달러로 시작한 그들은 처음에는 학교와 도서관에 컴퓨터를 들여놓는 일(소프트웨어 시장 확대를 노린 행위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에 집중했다.

그러나 게이츠 2세는 아들 부부에게 다른 자선행위를 생각해보라고 권유했고 그들은 1998년 보건문제에 생각이 미쳤다.

게이츠 3세(빌 게이츠)는 그해 어느날의 한 신문기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가난한 나라가 전세계 질병의 90%에 걸리지만 보건자원은 단 10%만 받는다, 그런 중세적 보건여건이 워낙 널리 퍼져 있어 사회·경제 발달에 지장을 초래한다, 그런 내용이었다.

“트레이가 내게 그 기사를 보내왔다”고 게이츠 2세는 아들의 아명(兒名)을 인용해 회상했다. “‘아버지, 우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요’라고 말했다.”

보건문제 해결노력은 1998년 빈국들에 새 백신을 신속 전달하는 1억달러 규모의 프로그램으로 조촐하게 시작됐다. 그러나 게이츠 부부는 1년 뒤 7억5천만달러 규모의 백신기금 계획을 발표했다.

그렇게 방대한 규모의 자선기금 소식은 전세계에 퍼졌지만 규모 못지 않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설립방식이었다. 게이츠는 새 기금을 재단 안에서 별도로 유지하지 않고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에 연계시켰다.

백신기금은 GAVI의 재정을 담당하는 기구로서 다른 기증자들을 끌어오는 자석이 됐다(12억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이런 돈을 쓸 수 있게 되면서 부스러기 돈을 놓고 10년 동안 싸워온 보건 옹호자들은 함께 일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갑자기 자기 몫을 놓고 다툴 일이 없어졌다”고 뉴욕 퀸스 칼리지의 의학 역사학자 윌리엄 무라스킨은 말했다. “모두에게 돌아갈 만큼 돈이 충분했다.”

게이츠 재단은 그 뒤 백신기금보다 훨씬 더 커졌지만 여전히 같은 원칙을 준수한다. 수여 대상을 비즈니스 파트너로 간주하고 업무를 감사하며 나름대로의 기여를 요구한다.

어느 나라 정부가 이 재단의 지원을 받으려면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나름대로 보건분야 지출을 늘려야 한다. 게이츠 팀은 새 프로그램의 지원에 앞서 미래에는 자생이 가능할 것이라는 증거를 요구한다. “우리는 여기서 기계에 연료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촉매작용을 한다”고 스톤사이퍼는 말했다.

게이츠는 자신이 규합한 전문가들 말에 무조건 따르지는 않는다. 재단 업무에 직접 관여하며 재단에서 승인한 대규모 지원계획을 결재한다. 멜린다만큼 자주 돌아다니지는 않지만 가족휴가 때 면역학 관련서적과 개발 보고서를 탐독하는 것으로 소문이 났고 지원계획을 꼼꼼히 따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몇달 간격으로 그에게 산더미 같은 읽을거리를 보낸다”고 퍼킨은 말했다. “그는 우리에게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는 답하기 어려운 전문적 질문을 던진다. 백신에 대해 우리 못지 않게 많이 아는 것 같다.”

아마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게이츠는 백신 제조회사들을 고무시켰다. “기술은 구매력이 별로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장압력에 대한 반응으로 탄생한다”고 유엔 전문가들은 최근의 한 개발 보고서에서 말했다.

보건 옹호자들은 전통적으로 제약업계를 탓해 왔다. 게이츠는 비즈니스맨의 입장에서 민간기업들이 살돈도 없는 사람들을 위한 백신 개발을 위해 돈을 쓸 이유가 없다는 점을 잘 안다.

게이츠 재단은 그들을 비난하지 않고 대신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대담한 연구개발 노력을 지원하고 획기적 제품이 나오면 반드시 사용한다는 보장을 해준다. 게이츠가 지원하는 ‘국제 에이즈 백신 이니셔티브’는 현재 대여섯개의 복합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또 ‘말라리아 백신 이니셔티브’는 모기가 옮기는 플라스모디움 기생충에 대한 인체 면역을 강화하기 위한 여덟가지의 별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행운과 풍부한 자금, 그리고 소프트웨어 거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런 노력이 열매를 맺으려면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게이츠 재단은 우선 당장 필요한 대책들도 소홀히 하지 않으며 그중 상당수는 사람들의 생활에 변화를 가져왔다.

전체 어린이의 20%가 다섯살이 되기 전에 숨지는 모잠비크에서 게이츠 재단은 보건요원 양성과 어린이들에게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B형 간염 백신접종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게이츠의 지원을 받는 연구자들은 마니차 농촌지역에서 말라리아 발병을 밀착 감시한다.

현지병원에서 반경 10km 이내의 모든 가구를 감시하기 위해 자전거와 오토바이, 그리고 위성위치파악 휴대장비를 이용한다. 그 병원의 누추한 병실에서는 침대 하나에 어린이 환자가 두세명씩 누워 있지만 이제는 그 아이들 전원이 치료를 받는다. 올 여름부터는 그 지역의 지원자들이 게이츠가 지원하는 백신 임상실험에 참여할 것이다.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는 것이 때로는 그보다 더 간단하다. 포르토프랭스에서 북쪽으로 세시간쯤 가면 해안도시인 몽트루이 위쪽에 이브와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그곳 농민들은 바위투성이 언덕에서 옥수수·콩·사탕수수 농사를 지으며 먹을 것만 충분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1년 내내 물이 부족해 여인들이 몽트루이의 우물로 내려와 양동이에 물을 길어 머리에 지고 산길을 올라간다. 아기는 자주 낳지만(한 부부가 7∼8명을 낳는 일이 비일비재하다)살아 어른이 되는 건 확실치 않다. “다섯살이 되기 전에 죽는 아기도 꽤 있다”고 한 마을주민은 당연하다는 투로 설명했다. “열흘만에 죽는 아기도 있고, 8개월이나 2년 뒤 죽는 아기도 있다.”

게이츠 재단이 아이티에서 손잡은 파트너 중에 ‘월드 네이버스’라는 단체가 있다. 오클라호마에 본부가 있는 단체로 1996년 이후 이브와에서 일해 왔다. 이 단체의 현지 디렉터인 농업경제학자 캉타브 장-바티스트가 그 마을에 처음 왔을 때는 뒷간조차 없었다. 농민들은 곡괭이 대신 막대기로 땅을 갈았고, 대다수가 고리대금업자로부터 2백%의 고리에 빌려온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정보 외에 아무것도 갖지 못한 장-바티스트와 두 지역사회 책임자들은 농민들을 도와 연장은행, 씨앗은행, 그리고 자산 2천2백달러 규모의 저축대부조합 문을 열었다. 게이츠 재단 덕분에 이브와에서는 이제 풀뿌리 보건 프로그램도 싹텄다.

게이츠의 지원으로 1999년 출범한 보건 프로그램에서는 간호사 두명이 일하는데 이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보건활동 지원자를 양성하고, 이 지원자들은 또 다른 지원자를 가르친다. 매주 수요일 아침이면 수십명의 지원자가 교회와 시장들을 돌아다니며 자신들이 배운 보건의식을 전파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는 콘돔과 염소계 살균제 등 보잘 것 없지만 그들이 나누는 지식은 세상을 바꾼다. 병에 걸리면 부두 마술을 탓하던 사람들이 위생과 깨끗한 물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산파들은 병원에 가도 소용없게 되기 전에 미리 임신부의 이상징후를 파악하는 법을 배운다. 부부들은 가족계획과 번영의 상관관계를 깨닫는다. 이 지역에는 통계라는 것이 없지만 최근 이브와의 콘크리트 블록 마을회관에 모인 농민들은 아이를 전보다 적게 낳았으며 죽지 않고 자라는 아이도 늘었다고 큰소리로 확인했다.

게이츠는 아버지의 기대 이상으로 부응했다. 최근 카네기 코퍼레이션이 수여하는 자선메달 시상식에서 그의 부친은 “걔 애미가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나 눈앞의 과제는 여전히 방대하다. 2년 전 세계 지도자들이 뉴욕에서 밀레니엄 정상회담을 열며 새 세기를 맞이했을 때 그들은 만인을 위한 기본 보건이라는 이상을 포용하고 2015년까지 일련의 특정 목표를 세웠다.

지도자들의 결의대로 66개 국가가 유아 사망을 3분의 1로 줄이려는 계획에 동참했다. 그러나 유엔은 93개국이 주로 정치적 의지의 부족 때문에 이런 노력에서 처져 있다고 보고했다.

게이츠는 자신의 꿈은 “잘사는 나라 수준의 보건여건이 당연한 인권으로 간주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생전에 그런 일이 가능할까? 아마 어려울 것이라고 본인도 시인했다.

그러나 작은 승리들의 전망을 보며 그는 계속 정진한다. “모든 정치·사회·환경 문제를 일시에 해결할 수는 없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백신 같은 도구로 사람들의 고통을 덜 수는 있다.”

보건수준이 향상되고 출생률이 떨어지면 거의 자동적으로 사회·경제 발전이 뒤따른다. 보건수준 향상은 그 자체가 목적이지만 거기에는 수많은 부수효과가 따른다. 달리 말해 그것은 하나의 지렛대이며 게이츠는 그것을 밀어올릴 돈 2백40억달러를 갖고 있다.

Geoffrey Cowle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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