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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체부동에 살고 싶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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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호 31면

지난 2월 중순 서울 종로구 계동에서 체부동으로 이사하면서 법대로 종로구청에 가서 주소 변경 신고를 했다. 구청 직원이 내 외국인등록증 뒷면에 주소를 깨끗이 적어놓은 것을 보면서 큰 이질감을 느꼈다.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5가길’ 뒤에 집 번지수가 적혀 있고 괄호 안에 ‘체부동’이라고 써 있었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에 새 집은 늘 체부동이라는 동네의 맥락에 있었다. 쓸쓸하게 괄호 안에 처리한 것을 보면 마치 체부동이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후에 알아보니 ‘체부동’이라는 법정동은 실제로 없어졌다고 한다. 인접 동들도 마찬가지다. 통의동·통인동·누하동·필운동은 동네 사람들 사이에선 옛날처럼 흔히 사용되고 있는 지명이지만, 2012년에 새 주소제도인 ‘도로명 주소 제도’를 실시하면서 법적으론 다 없어진 것이다.

 아쉽게도 새 주소 제도를 실시하면서 지명에 담겨 있는 역사와는 단절됐다. 예를 들어 ‘체부동’과 ‘자하문길’을 살펴보자. 조선시대 말의 유명한 지리학자 김정호(1804~1866?)가 그린 지도인 ‘수선전도’(1824)를 보면 체부동(體府洞)이라는 지명이 나와 있다. 일제강점기 지도를 보면 1930년대 말까지 그대로 체부동으로 되어 있지만 그 이후엔 지명을 일본식으로 고침에 따라 ‘체부정(體府町)’으로 개명됐다. 광복 직후에 다시 체부동으로 바뀌었다. 결론적으로 체부동이란 지명은 조선시대부터 2012년까지 존재해 온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체부동은 지도에서 지워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자하문로’는 경복궁역에서 자하문 터널까지 이어지는 큰 길의 이름이고, 그 이름은 체부동에서 거리가 약간 먼 자하문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자하문은 한양도성의 사소문(四小門) 중 하나인 창의문의 속칭인데, 국토지리정보원이 편집한 ‘한국지명유래집(중부편)’엔 이렇게 나와 있다. “자하문의 정식 이름은 창의문(彰義門)이다. … 창의문을 속칭 자하문이라 한 것은 창의문이 자핫골인 지금의 청운동에 있으므로 해서 생긴 속칭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체부동이 새 주소인 ‘자하문로’로 바뀐 것을 보면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하문로는 체부동 동쪽 끝에 있고 자하문은 북쪽에 있는 청운동에 있기 때문에 체부동과 심리적 거리가 멀다. 게다가 한양도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하문 대신에 공식 명칭인 창의문을 부르는 추세가 있어 자하문로는 더욱 부자연스럽다.

 최근 한양도성과 한옥이 밀집된 지역에 대한 관심은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새 주소제도의 도입은 관심의 대상이 된 역사와 우리를 단절시킨다. 20세기 후 무자비한 개발로 역사성이 많이 사라진 서울에 오랫동안 흘러온 지명을 없애는 것은 오래된 것을 새롭게 보려고 하는 ‘오늘날의 감수성’에도 맞지 않는다. 아파트 지역에 사는 사람에겐 새 주소 제도가 편리한 점도 있겠지만 오래된 지역에 사는 사람에겐 자기의 주소를 기억하기 어렵게 됐기에 불편하다.

 새 주소 제도 도입의 명분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선진적’ 제도를 받아들인다는 것인데, 선진국 중에서 전국적으로 주소 제도를 도입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지명은 그 지역의 역사를 반영하고 주소 제도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뭐가 있을까?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스펙’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 ‘표준화’를 버리는 것이 해결의 출발점이다. 사회의 모든 것을 규격에 억지로 맞추려 하면 다양성은 물론 활기까지 잃는다.

 난 인공적 주소인 ‘자하문로 5가길’이 아닌 역사와 소통하는 체부동에 살고 싶다. 예전에 흥미롭게 읽었던 책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의 제목을 빌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서울에 정통 주소를 허하라’.



로버트 파우저 미국 미시간대에서 동양어문학 학사, 언어학 석사를, 아일랜드 트리니티대에서 언어학 박사를 했다. 일본 교토대·가고시마대를 거쳐 서울대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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