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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의원들, 목욕탕서 정한 보직명에 폭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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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서울 마포의 한 음식점. 새누리당 정몽준·이병석·정의화·이주영·서상기, 민주통합당 박병석·원혜영·김영환·김재윤 등 여야 의원 30여 명이 모였다. 평소 함께 만날 일이 적던 이들이다. 이들은 건배사로 ‘사우나’(사랑과 우정을 나누자)와 ‘우하하’(우리는 하늘 아래 하나다)를 외쳤다. “우리가 벌거벗고 얘기하면 못할 게 없지 않느냐” “앞으로도 자주 만나 대화하자”고 했다.

이는 ‘목욕당(沐浴黨)’ 모임이었다. 국회 의원회관 목욕탕을 이용하는 여야 의원들이 의기투합했다. 이 모임은 폭력 국회로 논란이 컸던 18대 국회 때(2009년 4월) “여야가 물밑 대화를 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당시엔 ‘당직 인선’까지 발표했다. ‘수압조절 위원장’ 정몽준 의원, ‘적정온도 유지 위원장’ 원혜영 의원, ‘냉온탕 수위조절 위원장’ 진영 의원, ‘수면실장’ 신학용 의원 등이다. 특히 ‘수질검사위원장’ 강기정 의원과 ‘여탕 친선 교류협의회장’ 김성회 의원은 2010년 연말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단독 처리하는 과정에서 난투극을 벌였다가 3개월여 뒤 목욕당 정기모임에서 화해의 러브샷을 나눴다.

하지만 19대 국회 땐 목욕당 당직은 없을 전망이다. 지난달 모임을 주도한 정몽준 의원실 관계자는 “이번엔 당직 없이 단순한 친목 모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8대 국회 때 당직 인선이 희화화되고 비판받았던 경험 때문이다.

이외에도 의원들이 활동하는 친목 모임은 많다. 전공도 모임의 명분이 된다. 대표적인 게 새누리당 이공계 출신 의원으로 구성된 ‘이공(理工)’ 모임이다. 이학·공학·의약학을 전공한 의원들이 2008년 11월 만들었는데 모이는 날도 매달 ‘20(이공)일’이다. 전자공학(서강대)을 전공한 박근혜 대통령도 회원으로 활약했다.

2011년엔 삼성동 자택에 회원들을 초대하고, 대선 전인 2012년 9월엔 정례회의에도 참석하는 등 애정을 과시했다.
국회의원 당선 횟수도 중요한 모임 고리다. 민주통합당엔 초선 의원 모임 ‘민초넷’이 있고, 새누리당엔 비례대표 초선 25명이 모인 ‘약속지킴이 25(약지25)’가 있었다. 민주당엔 여성의원 모임인 ‘행복여정’(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여성 정치인들의 모임)도 있다.

여야 의원들은 출신 대학에 따라 정당 구별 없이 자주 만난다. ‘서강여의포럼’은 서강대 출신 의원과 보좌관들의 모임이다. ‘강’씨, ‘류’씨 등 같은 성을 가진 이들도 여야 구분 없이 만난다는 후문이다.

의원들이 끈끈한 소속감을 자랑하는 모임은 종교 모임이다. 법회나 미사, 예배를 함께 보고 종교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현안 해결에 적극 나선다. 우선 최근 활동이 활발한 게 불자모임 ‘정각회’(바르게 깨닫는다는 의미)다. 매달 첫째 주 수요일에 국회 본관 지하에서 법회를 열고 기초교리 강좌도 한다.

정갑윤·주호영·송영근 의원은 지난 21일부터 열흘 일정으로 인도 성지 순례에 나섰다. 법회엔 현직 의원 41명 외에 국회 직원 불자회 회원까지 합쳐 150명 넘게 모인다. 퇴직한 전직 의원 불자회 모임인 ‘정각 동우회’, 보좌관 불자회인 ‘법우회’도 있다. 최근 교리 강좌엔 가톨릭신자인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불교를 공부하겠다며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각회는 19대 국회를 앞두고 회장단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심했다. 대선을 앞두고 2000만 불자에게 자신의 소속당 후보를 홍보하기 위해 여야 의원들이 서로 회장을 맡으려 했기 때문이다. 결국 회장은 새누리당 의원이, 부회장은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 의원이 맡는 것으로 정리됐다.

한 회원은 “진통 끝에 회장단이 꾸려져선지 요즘은 갈등이 별로 없고 활동도 활발하다”며 “최근 조계종이 불교계 명예회복을 위해 10·27 법란 관련 법 개정안에 종단의 뜻을 반영해 달라고 요청해 와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역대 국회 때도 정각회 소속 의원들은 전통사찰보존법이나 문화재보호법 통과에 적극 나섰다.

의원 수로는 ‘국회 조찬기도회’가 최대

기독인 모임인 ‘국회 조찬기도회’의 활동도 활발하다. 여야 의원 107명이 활동 중이라 숫자로 최대 규모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회장을 맡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예배를 하는데 이달엔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한 국가 조찬기도회를 준비했다. 이 모임은 18대 국회 때도 여야 의원 115명이 회원으로 등록해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당시 일부 크리스천 의원은 본회의장 점거 농성을 하면서 의원기도회를 열었다. 17대 국회 때는 기독교 사학들과 관련된 사립학교법 조정에 나섰다.

국회 ‘가톨릭신도의원회’ 소속 의원도 57명에 이른다. 매달 미사를 보고, 매달 3만원씩 회비를 모아 연말에 불우이웃 돕기를 한다. 지난해 9월 모임을 결성했을 때와 올해 초엔 염수정 대주교와 함께 미사를 했다고 한다. 이 중 의원 42명은 가톨릭 순교 성지인 서소문을 역사문화공원으로 만들어 달라는 가톨릭계의 요청에 따라 지난해 말 ‘서소문 역사문화공원 조성사업에 관한 청원서’를 서울시에 제출했다. 이 모임 소속 의원들은 이전 국회에서도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제한하는 생명윤리법을 발의하거나 사형제 폐지 토론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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