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 척결 열외 없다 … 시진핑 딸도 유학 중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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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裸官)’ 타파의 불똥이 중국 최고위 지도자들에게까지 튀고 있다. 해외유학 중인 자녀들을 학업도 마치기 전 속속 불러들이고 있는 형국이다.

 ‘벌거벗은 관리’란 뜻의 나관은 가족과 재산을 모두 해외로 빼돌리고 몸만 중국에 남아 있는 관리를 말한다. 한국의 ‘기러기 아빠’와 비슷한 형태지만 자녀교육보다는 재산 도피가 주목적이다.

 지난해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추산한 중국 내 나관의 수는 118만 명이다. 미국 비영리 조사기구인 국제금융청렴성(GFI)에 따르면 2000년 이후 10년간 나관들이 해외에 도피시킨 자금은 2조7000억 달러(약 3000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나관이 온라인에서 이슈가 되자 중국 당국은 이 단어의 검색을 차단하기도 했다.

 공산당원에 대한 감찰·사정을 담당하는 왕치산(王岐山) 기율검사위 서기는 지난 1월 당 간부 자녀와 가족·비서 등 측근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반(反)부패를 총지휘하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등 최고 지도부는 해외 유학 중인 자녀들을 귀국시키는 ‘솔선수범’을 보여야 했다.

 중화권 매체들에 따르면 시 주석의 딸 시밍쩌(習明澤·21)를 비롯해,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딸,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부주석의 아들, 왕양(汪洋) 부총리와 마카이(馬凱) 부총리의 딸 등이 최근 새 정권 출범을 전후해 귀국했다. 시밍쩌는 시진핑과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사이에 태어난 외동딸이다. 2010년 미국 하버드대에 입학했다가 아버지가 당 총서기에 오른 지난해 11월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귀국했다. 하버드 재학 시절 신분 노출을 피하려 가명을 썼고 중국인 경호원이 24시간 보호했다고 한다. FBI가 경호했다는 설도 제기됐다.

 부친과 같은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로 유학 갔던 리커창의 딸도 최근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베이징대에서 일하고 있다. 리위안차오의 아들 리하이진(李海進)은 상하이 푸단(復旦)대 졸업 후 예일대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다 최근 귀국했다. 리위안차오 역시 푸단대와 하버드 케네디 행정대학원을 나왔다. 마카이의 딸은 미국에서 직장을 다니며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지만 부친이 부총리에 오르자 귀국해야 했다. 이들 대부분은 귀국 전 현지의 집과 자동차를 처분하고 은행 계좌까지 폐쇄했다고 한다.

 개혁·개방 정책이 시작된 1970년대 말부터 중국 최고 지도자들은 해외 유학을 통해 자손들에게 부와 권력을 대물림해 왔다. 최근에도 천윈(陳雲) 전 부총리의 손녀 천샤오단(陳曉丹),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손자 장즈청(江志成), 자오쯔양(趙紫陽) 전 당 총서기의 손녀 자오커커(趙可可) 등이 하버드를 졸업했다. 부패 등 혐의로 지난해 실각한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서기의 아들 보과과(薄瓜瓜)는 옥스퍼드와 하버드에 다니며 호화 파티에 참석한 사진이 공개돼 중국 네티즌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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