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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문화계를 내다본다|「앙케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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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국의 문화계는 차차 안정을 찾고 있다. 침체한 안정이 아닌 진지한 반성 속에서의 발전적인 안정이다. 문화인들은 한결같이 새해에 큰 기대를 품는다. 지난해는 그런 소지들이 더러 엿보였기 때문이다. 여기 각계의 지도적 인사들에게 67연도 문화계의 진단을 의뢰해 본다.
①최근 문화계의 움직임은 활발한 면이라 생각하십니까, 침체한 면이라 생각하십니까? 침체 하다면 그 원인은? 그리고 해결 방안은 무엇입니까? (귀하의 전문 분야별로 말씀해 주십시오)
②새해의 전망은 어떻습니까?
③이해에 꼭 실현시켜야 할 「공동의 지표」는 무엇입니까?
④정부의 문화 정책에 대하여 요청하고 싶은 점은?
⑤새해에 개인적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은?

<학술>외국에의 연구 소홀|거의 관심 밖의 민속학 분야
①인문과학계는 대체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②작금 학계는 우리 나라 중심의 연구 활동에 치중하는 느낌이다. 역사·문학·정치·경제·사회학에 걸쳐 「자국을 알자」는데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물론 그것은 좋은 현상이나 한편 외국에 대한 연구가 소홀하다. 역사부 면만 하더라도 동양사의 연구가 부진하다. 이웃 중·만·몽 연구가 고작 우리 나라와의 관계 연구에 그치고 있다. 다만 일본에 대해서만 한·일 관계 정상화 이후 활발해지고 있다.
③부진한 분야, 인적으로 부족한 방면을 개척하는데 노력해야겠다. 인문과학 중 특히 인류학 내지 민속학 분야는 거의 관심 밖에 있는 느낌인데 이 방면에 눈을 돌림으로써 없어져 가는 자료를 수습하고 인접 국가에 대해 관심을 두는 첩경을 마련해야겠다.
④그동안 혼란을 빚어온 문화 정책을 신년엔 일원화하기 바란다.
⑤오랫동안 계속해오던 「한국 고대사 연구」를 매듭 지을 예정이다. 여기저기 발표한 것들도 모으고 또 체계화하여 출판하려 한다. 학술원서 발행할 「과학 (인문·자연) 총람」도 신년에 내게 지워진 커다란 과제이다. <학술원 회장>

<문학>제도적으로 날극을|서구 일변도서 벗어날 때
①시집 출간이 작년보다 줄었다거나 동인지의 숙의가 좀 수그러졌다거나 하는 이유로 저조를 얘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문학지는 금년에 몇가지 더 늘었던 것을 지적할 수도 있다. 전작 소설도 몇편 나타난 것은 좋은 현상이다. 그러고 보면 저조와 전진의 해라고나 할지. 하지만 결코 후퇴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질적으로 여러 문학 부문에서 많은 향상을 보았다. 하도 많은 시인도 차츰 정리되는 것 같고-.
②앞서 지적했듯이 한국 문단은 차차 안정기로 자리를 잡을 것 같다. 문학지에나 의존하던 창작 의욕도 많이 그런 상황을 탈피하고 있다. 작가의 역량이 개발되고 폭이 넓어지고 「스케일」도 커 가는 것 같다. 비평 풍토도 상당히 밝아졌다. 나는 새해를 낙관하는 편이다.
③문학인이 정부에 의존하려는 것은 어디로 보나 좋은 현상은 아니다. 그렇다고 정부 당국은 문인들을 격려하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된다. 정신적으로 제도적으로 격려와 자극을 주어야 한다.
④이제는 서구 문학 일변도에서 벗어날 때가 되고도 지났다. 자기의 수호와 발견에 힘써야한다. 전통의 확립 말이다.
⑤고전국역 사업에 일념 하겠다. <예술원 회장·소설가>

<음악>사회 전체가 즐기게|청중 동원 위해 「캠페인」을
①사회가 음악을 애호하는 기풍이 생기고 음악 「파트론」들이 나서지 않는한 이 침체는 계속될 것이다. 우선 연주 면에서 볼 때 한 연주자가 의욕적인 연주회를 갖고 나면 으례 「적자」에 허덕이게 된다. 창작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작곡가에게 응분의 보수를 지불하고 작품을 위촉하는 예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②이와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젊은 음악인들의 창조적 의욕은 산발적이나마 여러 가지 형식의 발표회를 갖고 있다. 심지어는 전자 음악이니 전위 음악이니 라고-. 이것은 새해의 전망이라기보다 내일의 전망으로 우리를 고무시키는 일이다.
③여러 음악 단체는 현재의 소극적 태도를 버리고 청중 동원을 위한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여야 할 것이다. 음악인 스스로도 산발적이고 개인적인 움직임을 지양하고 보다 대국적 안목으로 청중 동원에 단결해야 한다.
④조그만 요청 한가지- 딴 보조보다 음악회 표를 팔아주는 정책이 아쉽다.
⑤오래 전부터 계획하던 「한국 음악 개론」의 영문판과 「국악사」 「악학 궤범 역주」 저술을 이해엔 완결 짓고 싶다. <서울대 음대 교수>

<영화>영화 금고를 꼭 만들겠다
①영화계의 움직임은 근년에 와서 확실히 활발해졌다. 그것은 양의 다수를 의미하는 것도 되지만 작품 내용을 선택하는 제작자들의 진지한 자세로 보아 질의 문제도 된다.
②최근 개정·통과된 영화법의 주요 골자는 제작 회사의 등록 문제였지만 공보부 당국은 시설 기준에 미급한 유능한 「프로듀서」에게도 활동할 길을 터놓겠다고 했다. 따라서 전망은 낙관적이다.
③무엇보다도 금년엔 「영화 금고」를 꼭 설치해야겠다. 소위 「보따리 장사」들의 압력을 받으면서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으며 해외 시장 진출은 더욱 아득한 일이다.
④「대종상」을 마련하여 좋은 작품엔 상을 주어 왔다. 그러나 상도 좋지만 우수한 작품이 나올 기틀을 먼저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⑤올해 66세. 은퇴할 시기도 되었으나 마음만은 아직도 젊다. 그래서 올해는 꼭 좋은 작품을 하나 맡아 감독하고 싶다. 소재는 동학란. 오래 전부터 구상하던 일인데…. <예총 부이사장·감독>

<대학>교권 확립 없이 발전 없다|문제 안은 채 표면은 소강 상태
①대학은 표면상 소강 상태에 있다. 그러나 어느 개인이나 단체나 평상시에는 그 진면목을 알 수 없는 법이다. 대학이 나아진 것처럼 보이나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다고 본다. 교권의 절대적 확립 없이는 대학은 결코 발전될 수 없고 사회의 진정한 발전도 기대될 수 없다.
②외관상으로는 더 나아질 것이다.
③집권자가 자신이 편하고 불편한 것만 생각하는 한 교권의 독립은 있을 수 없다. 집권자는 보다 높은 차원에서 민족의 장래를 생각해야 한다.
④공부하는 대학이 돼야 한다. 특히 사립대학은 기업체란 사고 방식을 청산해야 한다.
⑤말하지 않겠다. <성대 대학원장·국문학>

<연극>하루빨리 문화부 신설을|신념 갖고 노력하면 전망 밝다
①연극계는 예년보다 활발한 편이었다. 첫째 6·25 이후 공백기를 가져왔던 연극 기술자가 각 대학 연극과 등 교육 기관을 통해 배출되었을 뿐 아니라 젊은 연극인들의 실력이 배양되었고, 둘째는 각종 상 제도가 연극인의 의욕을 북돋우어주었다.
②이상과 같은 의욕과 신념 속에서 계속 노력한다면 전망은 밝다.
③그러나 극계의 암이라면 상설극장이 없다는 것이다.
④요즘 논의되고 있는 문화·예술의 전담 부서인 문화부의 신설을 하루속히 실현시켜야 한다.
⑤「드라머·센터」 개관 당시의 꿈이었던 「무대가 놀지 않는 극장」을 위해 계속 노력하는 것이다. <극작가>

<미술>침체와 답보만 거듭|「예총」 재단 법인체 구상
①지난해 미술계는 좋은 작가들이 해외서 돌아오고 또는 국제적으로 교류하는 등 자극이 많았고 그만큼 장려되었다. 일본서 열린 제5회 국제 조형 예술회에 우리 나라가 특별 초청돼 참가한 것은 참으로 경하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뒷받침이 의연하게 지지하여 전제적인 움직임은 활발치 못하다 하겠다.
②신년이라고 특별한 전망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의 문화 정책이 일원화한다면 보마 나은 기대를 가져도 좋지 않을까.
③미술계라기보다는 전체 예술인, 즉 예총의 공동 목표로서 재단 법인체의 설립을 구상하고 있다. 예총이 사단 법인체로서 정부 보조에만 의존하기에는 지금 커다란 난관에 부딪쳐 있으며 따라서 예총은 자체 정비의 단계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④역시 문화 정책 일원화의 문제이다. 신설되는 기구 문화청 정도가 아니라 온전한 「부」로서 발족하여야 함을 예총 총회는 앞서 결의한바 있거니와 앞으로 더욱 건의할 방침이다.
⑤작가로서 작품 하고자 하는 의욕의 가장 큰 것이겠다. <예총 회장>

<여성>주부 클럽에 기대|소외감 버리고 참여해야
①지식층의 여성들이 단결하여 공동 문제를 해결하는데 노력하는 경향이 짙어가고 있다. 그 움직임은 막연한 관념이나 정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담당 분야를 해결하고 있다.
여성 운동이나 「그룹」 활동에 일반 여성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문제다. 앞으로는 전체 여성이 각 분야별로 합심하여 연대 책임을 느끼며 여성 운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겠다.
②모든 여성이 편리한 지역과 직장 또는 취미를 중심으로 모이는 「주부 클럽」이 많은 성과를 거두리라 생각한다.
③여성 전체의 대화와 움직임의 광장이 될 수 있는 새 회관을 건립하는 문제다. 그리고 생활과 직결되는 여성 운동과 사회 참여, 권익 옹호를 실현시키는 일이다.
④협조적이었다. 신년에는 좀더 적극적인 격려와 협조가 있었으면 한다.
⑤아담한 한옥을 현대화시켜 꾸며 보고 싶다. 전통적이고 아름다운 순 한국식 분위기에서 외국인을 초청하여 한국을 소개하고 젊은 한국 여성들에게는 우리의 고유한 생활 양식을 재인식 재발견하도록 하겠다. <여성 단체 협의회 회장>

<출판>출판·판매 분업 시급|타격이 컸던 교과서 개편
①최근의 출판계는 어느 때 없이 침체해 있었다. 사회의 경기 변동에 휩쓸린 악순환이기도 했지만 교과서 개편이 준 타격도 대단했다. 출판사들은 그것에 얽매여 출판다운 일에 전념하지 못했다. 또한 우리 나라의 원시적인 판매 질서도 역시 출판계에 활기를 불어넣는 일에 방해가 되었다. 규모 있는 판매 회사 (도매상) 같은 것이 있어야 그 질서가 잡힐텐데 우리의 실정은 그렇지 못하다. 출판도 하랴 그 책을 팔기도 하랴, 이렇게 출판계는 분업화되지 못했다.
②전망은 별로 밝지 못하다. 새해에도 교과서 개편 (고교)에 전념해야할 형편들이다.
③정부는 출판 정책이란 것을 갖고 있지 못하다. 정기 간행물은 공보부에서, 단행본은 문교부에서, 그러나 사무적인 관할은 시청에서. 이런식으로 이원화도 아닌 다원화의 실정이다. 출판 금고를 설치해서 출판 풍토를 안정시키고 「출판 진흥 위원회」 같은 일원화된 기구가 있어 정책다운 정책을 세워 주기를 기대한다.
④앞서 말한 정부에의 기대가 그것이다.
⑤「20세기 문학 전집」을 20권 예정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출판 문화 협회 회장·을유문화사 사장>

<과학>주력을 산업 응용 분야에
①자연과학계가 전반적으로 너무나 첨단적인 이론에만 관심을 기울여 왔다. 시설이 빈약하고 연구비가 부족한 우리 실정에서 성과가 기대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우수한 학자가 외국에 가서 돌아올 수 없는 처지에 있다. 하루 속히 연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선결 문제다.
②미국으로 과학자가 유출되는 것은 여러 나라에 공통되는 현상이나 우리의 경우는 너무 심하다. 새해에 갑자기 무슨 좋은 수가 생길 수는 없을 것이나 차츰 희망적인 면이 보인다.
③한국 과학 기술 연구소의 활동과 과학 진흥 법안 등 정부의 과학 진흥 정책에 기대를 건다.
④너무 첨단적이고 큰 「테마」여서 현실적으로 도저히 성과를 낼 수 없는 문제만 붙잡고 씨름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절실한 요청에 응하여 산업에 직접 응용될 수 있는 분야에 힘을 넣을 필요가 있다.
⑤지금까지 해오던 우주선 관측과 고체 물리 연구를 계속 하겠다. <서울대 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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