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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세상보기] 인간성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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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유전체 지도에 이어 원숭이 유전체의 염기서열 초안이 발표되었다. 결과를 보면 원숭이는 사람과 약 1.23%의 차이를 나타낼 뿐이다. 공동의 조상에서 나뉜 것이 6백만년 전에 불과한데 사람은 지구를 지배하고 있고 원숭이는 동물원의 구경거리가 돼있다. 이 1.23%의 차이는 무엇일까?

학자들은 기능을 모르고 있는 인간 유전자들의 나머지 반의 기능을 다 알고, 원숭이와의 차이를 나타내는 유전자를 알면 인간의 비밀을 알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전자는 단백질을 만들고 단백질이 기능을 나타내니까, 모르고 있던 단백질을 찾아 그 기능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테오믹스다. 새 단백질을 찾으면 과학적인 성과도 되고, 신물질로 특허를 낼 수도 있고, 인슐린 같은 기능성 단백질처럼 병의 치료에도 쓸 가능성이 있다.

생명현상의 본질, 인간성 자체를 알고 싶어하는 일군의 학자들은 유전자와 그 기능을 모두 알게 되면 인간 생명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의 유전자가 3만5천개니까 1.23%의 차이에 해당하는 4백여개 정도의 유전자에 인간성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있고 그것의 기능을 알면 인간성을 결정하는 기전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보다는,4백여개의 유전자들이 기존의 3만5천개 유전자와 일으키는 상호작용과 그 상호작용이 일으키는 새로운 특성의 창발(emergence) 에 주목한다.

중요한 기능을 하는 유전자를 하나 없애버려도 개체에 아무런 영향을 일으키지 않는가 하면, 일종의 단세포 생물에서 세포질의 일부를 떼어내면 그 영향이 후대에 '유전'되기도 한다. 생명의 구성요소가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세포핵에 존재하는 유전체가 세포의 기능을 총괄 지휘하는 것이 아니다.

가령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미토콘드리아만 하더라도 독자적 유전체가 있어 핵 유전체와 협동관계를 나타내는데, 이렇게 보면 세포는 핵(유전체) 이 지배하는 왕국이라기보다 다양한 세포의 소기관들이 상호작용해 만드는 민주적 자치단체에 가깝다.

그래서 생명체의 복잡성에 내재하는 법칙, 이것이 어떻게 진화하는지가 관심사가 된다. 생명현상을 수학적으로 접근하는 복잡성의 과학이 대표적인데, 샌타페이 연구소의 스튜어트 카우프만은 복잡성을 가진 진화 시스템은 어떤 질서를 가지게 마련이며 A는 B, B는 C, 결국 Z는 A의 식으로 서로서로 밀어주는 사이클, 이른바 대사(metabolism) 를 형성하는 자조직화(self organization) 가 핵심 프로세스로, 복잡성이 증가하면 생명의 탄생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생명의 핵심이자 진화의 단위로서 '메타볼롬'의 개념이 여기서 나온다. 생명의 물리적 구조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좀더 확대된 '피지옴'을 강조하기도 한다. 여기서 유전체는 생명의 기본단위인 메타볼롬에 필요한 단백질을 제작하는 시방서이며, 피지옴은 그 건축물이 된다.

원숭이 지놈 연구가 완성되면 무슨 놀라움을 줄지 모르지만 만물의 영장과 동물원 구경거리 사이의 차이는 피지옴의 차이에 있고 '그렇게 진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상의 답을 얻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이홍규 서울대 약대 교수 ·내분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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