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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내 본 중학교 학업성취도 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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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대청중학교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수업 중 졸거나 딴짓하는 학생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면학 분위기로 유명하다.

공부 잘하는 애들이 모인 학교는 당연히 학업성적이 좋다. 그런데 학업성취도 순위가 낮은 초등학교에서 온 학생이 주로 모여 있는 중학교의 학업성취도 순위가 높은 건 왜일까. 또 2년 전만 해도 부진했던 중학교가 어떻게 전국 1위로 뛰어오를 수 있었을까. 답을 찾아봤다.

글=전민희 기자 , 사진=김경록 기자

전국 중학교 학업성취도 분석 결과 1~15위는 학생 선발권을 갖고 있는 국제중과 지방에 있는 소규모 학교가 대부분이었다. 이 중 시험에 응시한 재학생 전원이 보통 학력 이상인 학교는 10곳이었다. 부산국제중과 충주미덕중을 제외한 나머지 8곳은 모두 정원이 50명을 넘지 않는 소규모 학교다. 일부 학생만이 기초 학력 미달 평가를 받은 대원국제중(11위), 청심국제중(12위), 브니엘국제예술중(14위), 영훈국제중(15위)이 뒤를 이었다. 중학교 학업성취도 평가는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5개 과목 시험을 보지만 이번 분석에서는 국·영·수 3개 과목 결과만 활용했다.

 국제중이 두각을 나타낸 건 당연한 결과다.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미리 선발하는 데다 교과 내용도 심화학습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국제중학교 중에서 전원이 보통 학력 이상인 곳이 부산국제중 한 곳인 게 오히려 의외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선발 당시 학업성적이 뛰어난 학생 중 일부가 입학 후 오히려 성적이 부진해진 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중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진 이유는 뭘까. 김윤도 청심국제중 입학홍보담당은 “국제중 재학생 중엔 해외 거주 기간이 길어 한국어에 서툴거나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이 더러 있다”며 “국어·영어·수학 세 과목 평균을 내면 학생 전원이 보통 학력 이상을 받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회적배려대상자나 정원 외로 입학한 학생으로 인한 변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국제중인만큼 영어 과목은 대체로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대원국제중과 청심국제중은 평가 대상 전원이 영어 과목에선 보통 학력 이상이었다. 그러나 영훈국제중은 영어 과목에서도 보통 학력 이상 비율이 99.4%였다.

 전국 상위 50위권 가운데 1~15위를 제외하면 서울·경기·전남·충북·인천·강원·경북 등 다양한 지역 학교가 고루 분포됐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대구 지역 중학교가 두드러진다. 강남 지역 중학교가 5곳이나 되기 때문이다. 강남구 대청중(19위)과 대왕중(28위)·압구정중(36위)·진선여중(44위), 그리고 송파구 잠실중(40위)이다. 대구 지역 학교로는 동도중(18위)과 경구중(20위)·오성중(21위) 3곳이 포함됐다.

 강남 3구 중학교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는 지난달 본지가 공개한 초등학교 성취도 결과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2013년 2월 20일자 열려라 공부 2~3면, 일부 지역 江南通新 10~11면>

 초등학교의 경우, 전국 순위 500위 안에 든 강남 3구 학교는 왕북초·대도초(이상 강남구)·원명초·반포초(이상 서초구)·오륜초·세륜초(이상 송파구) 6곳뿐이었다. 사교육 1번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하지만 중학교는 명성 그대로였다. 강남 3구에 있는 중학교 63곳의 절반에 가까운 29개 중학교가 서울시 상위 50위 안에 들었다. 강남구 학교가 14곳으로 가장 많았고, 서초구와 송파구가 각각 9곳과 6곳이었다. 서울시 상위 20위권으로 더 좁혀서 살펴보면 6개 학교를 빼곤 모두 강남 3구 학교다. 나머지 학교 역시 국제중 두 곳을 포함해 광진구 광남중(4위)과 양천구 월촌중(6위)·신목중(17위)·목일중(18위) 등 교육열 높기로 유명한 지역 학교들이다.

 초등학교 때 상대적으로 뒤처지던 강남 3구의 학업성취도가 중학교에 가서는 이처럼 극적으로 반전되는 이유는 뭘까. 강남 3구 중학교 가운데 1위(전국 19위)를 한 대청중을 예로 들어보자. 대청중의 올해 1학년 신입생 356명 중 인근 대치초 졸업생은 214명(60%), 대곡초 졸업생은 96명(27%)으로 전체의 87%에 달한다. 대치초는 강남 3구에서 7위(전국 502위), 대곡초는 강남 3구에서 8위(전국 508위)의 학업성취도 결과를 낸 학교다.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전국 최상위권도 아니다. 그 학교 출신이 주로 모인 학교라면 초등학교와 비슷한 성적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청중 성적은 껑충 뛰어 오른다.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한다. 첫째, 외부 유입 효과. 둘째, 사교육 효과의 본격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다른 지역과 확연히 구별되는 면학 분위기다.

 외부 유입 효과란 한마디로 전학생이 많다는 얘기다.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1학년은 비강남권의 우수 학생이 대치동으로 가장 많이 이주하는 시기다. 서울시 25개 구별 2010·2011학년도 초등학교 순유입자 수(전학 온 사람 수에서 전학 간 사람 수를 뺀 숫자)를 살펴보면 비강남 학생이 강남으로 몰리고 있는 현상을 뚜렷이 발견할 수 있다. 2011학년도 강남구 초등학교의 순유입자 수는 878명, 2010년도는 1102명이었다. 25개 자치구 중 1위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대청중·대명중은 특목고·자율고에 재학생을 많이 합격시키는 학교”라며 “고교 입시 성과가 좋은 중학교에 배정받게 하려고 자녀가 초등학교 6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 때 이 인근으로 이사하는 학부모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중학교뿐 아니라 인근에 숙명여고 등 명문 고교가 있는 것도 이사를 결심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사교육이란 분석도 있다. 초등학교 때 받은 사교육이 중학교에 올라가서야 효과를 본다는 얘기다. 김현정 디스쿨 대표는 “초등학교 때 6개월에서 1년 정도 해외연수를 다녀온 뒤 꾸준히 영어 학원을 다니며 실력을 쌓는다”며 “초등학교 때 영어 실력을 쌓아둬야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국어·수학 등 다른 과목 사교육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효과가 중학교 학업성취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대청중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 윤모씨는 “강남 지역 초등학교는 잘 못 가르치는데 중학교만 특별히 더 잘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중학교 때는 교과 내용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사교육을 덜 받는 비강남 학교의 학업성취도가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업성취도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하나 더 있다. 학습 분위기다. 강남, 특히 대치동은 면학 분위기 좋기로 소문난 동네다. 많은 학부모가 위장전입을 해서라도 자녀를 강남 지역 중학교에 보내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5개년(2008~2012) 동안 경시대회 참여 인원을 보면 이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성균관대 주최 전국 영어·수학 학력경시대회와 한국수학경시대회(KMC) 참가자 중 강남 지역 출신이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다. 임 대표는 “강남구에서 시험에 응시한 학생은 4841명으로, 교육열 높다는 양천구(3541명)보다 1000명이나 더 많다”고 말했다. 서초구(2501명)와 송파구(2107명)보다는 두 배가량 높다. 4개 지역의 최근 5개년간 평균 중학생 수는 송파구(2만6000명), 양천구(2만5941명), 강남구(2만1088명), 서초구(1만4617명) 순이다. 경시대회 수상인원 역시 강남구(1231명)가 양천구(755명)나 서초구(592명)·송파구(456명)보다 훨씬 많다. 강남구 D중학교 이모 교사는 “학교 분위기가 학교 수준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수업 분위기가 좋은 강남의 몇몇 중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에 떠드는 학생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학업성취도 평가를 치르는 중학교 3학년 때는 고교 입시에 대한 긴장감이 높은 시기다. 대청중은 올해 입시에서 3학년 418명 중 58명을 특목고·자율고에 합격시켰다. 영재고 8명, 과학고 3명, 외국어고 9명, 전국단위 모집 자율형사립고 6명, 지역단위 모집 자율형사립고 32명 등이다. 지원자는 합격자의 두 배가 넘는다. 4명 중 1명꼴로 고교 입시를 준비한 셈이다. 면학 분위기가 좋아질 수밖에 없다. 신춘희 대청중 교장은 “강남구 중3 학생은 고3 수험생 못지않게 입시를 준비한다”며 “본인은 입시를 치르지 않더라도 입시 준비하는 친구를 보면서 자연스레 학습 의욕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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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업성취도평가

매년 한 차례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치른다.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은 국어·영어·수학, 중학생은 이 세 과목에 과학과 사회 두 과목을 더 본다. 성적은 성취도에 따라 ‘보통 학력 이상’‘기초 학력’ ‘기초 학력 미달’ 3단계로 나눈다. ‘보통 학력 이상’은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 성취목표의 50% 이상을 달성한 학력 수준이다. 성취도가 20~50%이면 기초 학력, 20% 미만이면 기초 학력 미달로 분류한다. 기초 학력 미달인 학생은 진급을 해도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고 교육 당국은 판단한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운영하는 ‘학교알리미’ 사이트에 학교별로 이 결과가 공개된다. 교과부는 학교의 서열화를 부추긴다며 전국 학교 순위는 따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부터 초등학교 학업성취도 평가를 아예 폐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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