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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0조원 쏟아붓고 빈손 … ‘충격과 공포’는 미국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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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2003년 3월 20일 새벽(현지시간), 미국의 바그다드 공습으로 시작된 이라크전쟁의 작전명은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였다.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에 압도적인 화력을 퍼부어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하고 이라크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안겨 주겠다는 명분이 담긴 이름이었다.

 후세인은 제거됐다. 하지만 무모한 전쟁으로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힌 쪽은 승자인 미국이었다. 4500명 가까운 미군이 희생되고 2조2000억 달러(약 245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붓고도 손에 쥔 건 거의 없었다. 생화학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는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후세인의 알카에다 연계설도 밝혀내지 못했다. 명분이 원천 무효화된 전쟁이었다. 미국은 국력을 허비했고 국제적 위상은 추락했다. 막대한 전비는 금융위기로 허덕이는 미국 경제의 회복을 가로막는 족쇄가 되고 있다.

 이라크가 전쟁 전보다 더 자유로워지기는 했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종파·정파 분쟁은 이라크는 물론 중동 평화까지 위협하는 새 불씨가 되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개전 후 몇 달 안에 이라크를 중동 한가운데 있는 친서방국가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미군 전투병력이 이라크에서 철군을 완료한 것은 8년9개월이 지난 2011년 12월 15일이었다. 게다가 이라크는 미국이 적대시하는 이란과 더 가까워지고 있다.

 2006년 집권한 누리 알말리키 총리를 중심으로 한 다수 시아파(인구의 60%) 정권은 후세인 시절 권력을 독점했던 소수 수니파(37%)를 소외시키고 있다. 비판자들을 쫓아내고 정파 간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난을 듣는다.

 종파 간 분쟁은 2006~2007년을 고비로 잦아드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시 격화되는 양상이다. 영토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서부 수니파 지역 안바르주에서는 극단주의 세력과 알카에다 연계조직이 되살아나고 있다. 안바르주 등에서는 지난해 12월부터 매주 금요일 기도회 후 수니파에 대한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긍정적인 부분도 없지 않다. 해외 투자가 들어오면서 이라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내 2위 산유국으로 다시 부상했다. 고급 호텔과 쇼핑몰들이 곳곳에 들어섰다. 바그다드에 새로 문을 연 한 레스토랑에서는 웨이터들이 아이패드로 주문을 받는다. 한국의 서희·제마·자이툰부대가 주둔했던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은 급속히 안정을 찾고 부흥의 길을 걷고 있다.

 수치로 본 이라크전 10년 결과는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미군 사망자는 4488명, 부상자는 3만2226명에 이른다.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는 13만4000명으로 추정된다.

 미국 납세자들은 의회가 승인한 공식 전비 8000억 달러보다 훨씬 많은 돈을 지불했다. 부상자 치료비, 조달비용 이자 등을 합하면 2조2000억 달러나 된다. 브라운대 왓슨국제문제연구소는 2053년까지 총 6조 달러가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라크 석유를 판 돈으로 500억 달러를 충당하면 될 것이라는 당초의 계산보다 수백 배나 많은 돈이다. 도로·수도시설 등 인프라 재건비용 2120억 달러 중 600억 달러는 경찰과 군의 호주머니로 증발했다.

한경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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