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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 국제화 절실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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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양원근
KB금융 부사장
경영연구소장

대다수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경제위기는 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가. 위기는 시장이 스스로 교정하지 못한 불균형의 급격한 교정 작업일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은 과거 단기간에 고도 성장을 위해 하나 또는 소수의 산업을 선도적으로 육성하는 전략을 취했다. 연관효과에 의해 다른 산업도 성장하게 되고 한국 경제는 최고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금융은 산업의 성장에 비해 균형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결국 금융이 산업에 적절하게 자원을 배분하거나 리스크를 관리하지 못했다. 외환위기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대출이 부실화되며 발생한 2008년 금융위기도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에서 시작하였다. 2000년대 들어 동아시아 국가들은 무역흑자가, 미국은 무역적자가 누적되어 갔다. 대규모 무역흑자로 달러를 벌어들인 중국·일본 등 국가는 다시 미국의 국채를 매입하여 재정적자를 메워 주었다. 미국은 검약·긴축을 해도 부족할 판에 소비를 늘리고 주택을 구입하는 등 오히려 버블을 키워 갔다. 유럽은 그리스·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과 독일 등 중심국의 경제력 격차가 큰 상황에서 통화단일화를 만들었다. 유럽 재정위기는 환율을 통해 역내국가 간 불균형을 시정하는 기능이 상실되며 나타난 필연적인 결과다.

 그러면 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우려스러운 불균형은 무엇인가. 실물과 금융의 대외부문에 대한 불균형이다. 한국은 세계 47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시켰거나 타결하였다. GDP에 대한 수출·수입 합계의 비중이 10년 전에 60%대였으나 2012년 97%로 상승했다.

 그러나 금융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2011년 한국 4대 금융그룹의 해외수익 비중은 2%대 수준이다. 일본 3대 메가뱅크의 해외수익 비중은 26% 수준이다. 글로벌 은행들은 50%를 훌쩍 넘는다. 이미 2008년 한국은 산업과 금융의 대외부문이 균형된 경제였으면 덜 심각했을 엄청난 공포와 고통을 경험하였다. 2008년 해외수요가 급격히 감소하자 산업 쪽에서 달러 공급이 예상과 달리 크게 축소되었다. 이때 은행들 역시 해외에서 회수할 달러자산도 미미하고, 달러조달처도 취약했다. 즉 기업의 해외영업은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금융이 상황에 따라 대처할 능력은 크지 않다. 당시 원화는 삽시간에 67%나 절하되며 위기 중심국이 아니면서 통화가치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게 떨어졌다. 이코노미스트들이 미스터리로 꼽는 사건이다.

 이제 이 틀을 바꿔야 한다. 금융국제화는 시급히 추진돼야 하고, 다음 세 가지 요건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은행은 대기업의 국제영업을 뒷받침하며 달러 예금을 확보해야 한다. 물론 국내 시중은행들도 기업의 외화 조달 주선, 글로벌 경제자문 등 서비스 질을 높여야 한다. 둘째로는 민간 상업은행을 통해 시중의 달러가 일부 흡수되고 해외로 투자·대출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현재는 달러가 모두 보유액으로 쌓이며 국내 시중은행들이 달러예금을 늘려 해외영업을 할 여유가 작다. 셋째, 은행 및 금융의 국제화에 대한 책임과 사명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경영진 및 임직원에 있다는 스스로의 자각이 필요하다. 해외영업을 할 수 있는 전문성과 언어 능력, 경험을 갖고 있는 인재들이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은행들은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해 더 이상 높은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국내 시장보다 해외시장 개척에 눈을 돌려야 한다. 더욱이 은행의 해외영업 확대는 한국 거시경제의 불균형을 잡으라는 시급하고도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지난 경험으로 불균형을 방치하면 어느 순간 항상 과격하게 균형을 향해 움직인다.

양 원 근 KB금융 부사장·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