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떠돌던 2011년 무슨 일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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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011년 11월 23일 대구에서 한·미 FTA 반대 시위자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중앙포토]

“멕시코는 FTA 때문에 관료 15명이 총살당했고 대통령이 해외로 망명했다.” “볼리비아는 FTA 체결 후 물값이 폭등해 국민이 빗물로 생활한다.” “우리나라에도 총기 소지가 허가돼 사망 사고가 폭증할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시위가 극에 달했던 2011년,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망을 떠돌아다니던 ‘FTA 괴담’ 중 일부다. 하나같이 근거가 희박하거나 와전 또는 왜곡된 내용이지만 파장은 컸다. 이런 괴담은 우리나라가 반년 이상 극심한 국론분열을 겪은 원인이 되기도 했다.

 FTA 반대 움직임은 2011년 5월 한·EU FTA 국회 통과 논란과 6월 민주당(현 민주통합당)의 한·미 FTA 재협상 주장 제기 이후 서서히 불거졌다. 그해 6월 29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집회 이후 2년여 만에 처음으로 서울 세종로 차도가 시위대에 점거되면서 본격적인 실력행사 국면이 시작됐다. 가을로 접어들어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를 주축으로 한 반대세력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미 의회의 FTA 비준안 통과를 계기로 덩치를 불렸다. 10월 28일 시위대가 국회에 난입한 데 이어 시위 진압 과정에 물대포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악화했다.

 재계가 비준 촉구 집회에 나서면서 국론 분열 양상도 나타났다. ‘카더라’ 괴담들이 SNS를 중심으로 본격 유포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검찰이 SNS를 통한 허위사실 유포 행위자에 대한 원칙적 구속수사 입장을 밝혔지만 반발만 키울 뿐이었다.

 극심했던 사회적 갈등은 결국 웃지 못할 촌극으로까지 이어졌다. 11월 22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비준안을 기습 상정하자 민주노동당(현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이 통과 저지를 위해 본회의장에 최루탄을 터뜨린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비준안이 통과됐지만 FTA 반대 목소리는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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