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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사파 대부 "호텔기습 조양은,무릎꿇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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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명동 ‘신상사파’ 대부 신상현(81)씨는 월간중앙과의 생애 첫 인터뷰에서 자신의 주먹 인생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주기중 기자]

지난 1월 5일 폭력조직 서방파 보스 김태촌씨의 장례식장. 백발의 한 노인이 들어서자 빈소에 있던 주먹들이 모두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명동 신상사파의 대부 신상현(81)씨였다. 그는 195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40년간 명동을 중심으로 서울 주먹계를 주름잡은 인물이다. 육군 상사 출신의 그가 이끌던 조직은 ‘신상사파’로 불렸다. 그는 주먹계를 은퇴한 뒤 외제차 사업을 하다 현재는 그만둔 상태다. 신씨가 지난 11일 월간중앙 4월호(3월 18일 발간)와 생애 첫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지금 주먹세계는 돈과 폭력만 있을 뿐 낭만과 가치가 사라졌다. 청소년들은 그 세계를 절대 동경해선 안 된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 인터뷰에 응했다고 했다.

 -50년대 서울의 주먹계는 어떠했나.

 “당시 서울의 주먹들은 3각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종로의 김두한, 명동의 이화룡과 이정팔, 동대문의 이정재가 그들이다. 이화룡씨는 선배로 존경했지만 알려진 것처럼 그의 행동대장 역을 맡은 적은 없다.”

조양은 사진=중앙포토

 -75년 소위 ‘사보이호텔 습격사건’을 겪으며 신상사파가 몰락했다는 설이 있다.

 “그 사건 이후 호남 주먹이 커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명동파는 90년대 초반까지 조금도 세가 위축되지 않았다. 세계 챔피언 김기수씨의 매니저를 했던 서모씨가 우리 사람이었는데 그를 호남 주먹들이 납치해 구출해온 적이 있다. 이 사건에 대해 호남 주먹들이 사과하러 온다기에 그날 사보이 호텔에서 기다린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아 나는 호텔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 사이 행동대장 조양은(63)이 습격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달걀로 바위 치기’였다. 배후였던 염천시장 주먹 조창조는 우리의 추적을 피해 3년이나 도망다니다 내 앞에 나타나 무릎을 꿇었다. 조양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들을 다 용서했다.”

 -50년대를 ‘낭만의 주먹시대’로 불렀던 이유는.

 “당시엔 피를 부르는 싸움이 드물었다. 여러 명이 한 명에게 몰매를 가하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소위 ‘다구리(몰매)’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주먹들은 태권도·씨름 등 전통 무술이나 복싱·레슬링 등 격투기를 익혀 몸을 단련했다. 미리 사시미 칼 같은 흉기를 준비하는 일은 수치로 생각했다. 싸움은 주로 일대일 ‘맞짱’으로 이뤄졌다. 싸우다 상대방이 다치면 바로 병원으로 데려갔다. 다친 사람을 길거리에 방치하고 자리를 뜨는 일은 남자로서 부끄러운 일로 치부됐다.”

 -김태촌씨를 어떻게 평가하나.

 “김태촌은 35년 넘게 감옥 생활을 했다. 선악을 떠나 가엾은 영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게는 깍듯하게 예의를 갖췄다. 그가 오랜 기간 보스로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 신세 진 정치·경제·연예계 인물이 셀 수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거칠었지만 성격이 직선적이고 사내다운 면이 있었다.”

 -왜소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주먹계의 대부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질구레한 이권을 밝히지 않고, 잔인한 폭력을 무분별하게 휘두르지 않았다. 현역에서 은퇴한 지 오래됐지만 전국 내로라하는 주먹들이 지금도 내게 자문을 하기도 한다.”

 -일대일 싸움에선 진 적이 없었다는데.

 “가장 중요한 건 ‘선빵’(선제공격)이다. 체구가 아무리 커도 주먹으로 턱을 한 번 정확하게 맞으면 단번에 쓰러진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속도와 담력이 승패를 좌우한다.”

글=한기홍 월간중앙 기자
사진=주기중 기자

◆명동 사보이호텔 사건

1975년 1월 2일 오종철파 행동대장 조양은씨가 서울 명동 사보이호텔에서 신년회 중이던 신상사파를 습격한 사건. 김태촌씨는 신상사파와 가까운 호남 선배들의 지시를 받고 이듬해 3월 조씨 선배인 오종철씨에게 보복을 가했다. 이후 조양은씨는 양은이파를 독자적으로 구축하고 범서방파 김태촌씨 등과 전국구 조폭으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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