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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소개팅 개발, 맞선과 채팅 사이 빈틈 공략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박희은 이음 소시어스 대표가 13일 서울 서교동 사무실에 남녀의 만남을 상징하는 39이음신39 캐릭터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그 자신은 아직 남자친구가 없다고 했다. 최정동 기자

2009년 4월 당시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박희은씨는 ‘문화콘텐트 최고경영자 과정’ 조교를 했다. 하루는 이 과정을 수강하는 통신사 임원이 그에게 애플의 ‘아이폰’을 건네주며 “한 번 써 보고 장단점을 말해달라”고 주문했다. 국내 판매 7개월 전 통신사가 아이폰 서비스를 실험하는 단계였다. 통화·문자전송뿐만 아니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다양한 정보를 이용하고 재미있게 가지고 놀 수 있는 게 신기했다. 박씨의 뇌리에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아니라 뭔가 많은 걸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4년이 지난 2013년 3월 박희은(27)씨는 스마트폰 앱을 활용한 소셜 데이팅 업체인 ㈜이음 소시어스의 대표다. 회원 수 75만 명, 직원수 47명, 지난해 매출 40억원을 기록한 어엿한 벤처기업이다. 올해 매출 목표는 70억원으로 세워놓았다. 2010년 회사를 세운 지 3년 만에 이룬 성과다.

 서울 서교동 서교제일빌딩 10층 사무실에서 13일 박 대표를 만났다. 그에게 최고경영자(CEO)란 느낌을 찾을 순 없었다. 캐주얼 옷차림은 여느 20대 후반 여성과 다르지 않았다. 사무실 분위기는 2000년대 초반 벤처기업과 비슷했다. 과자가 놓여있고, 외부 손님을 맞는 방에는 ‘설레는 손님방’, 쉬는 공간엔 ‘포근한 이음터’ 같은 재미난 이름이 붙어 있었다. ‘피플 만족은 이음의 모든 것’ 같은 문구도 곳곳에 붙어 있었다. 직원들 컴퓨터 앞엔 ‘글로이 김미경’ ‘에밀 김승희’ 같은 이름표가 모두 붙어 있었다. 앞은 닉네임(별명), 뒤는 본명이다. 사무실에선 이름 대신 닉네임을 부른다. 박 대표도 닉네임인 바키(BAKI) 또는 최고경영자(CEO)를 뜻하는 ‘세오’로 불렸다. 회사 조직을 직급이 아니라 일을 중심으로 유연하게 운영하기 위한 취지에서다.

이음의 소개팅용 앱 화면.

초기엔 “온라인 뚜쟁이” 비난도
이음의 사업 모델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미혼 남녀에게 소개팅 기회를 주는 것이다. 20~39세의 미혼 남녀가 프로필·취미 등을 등록하면 하루에 한 명씩 매일 낮 12시30분에 24시간 동안 유효한 이성을 소개시켜 준다. 상대방이 마음에 들면 OK 버튼을 눌러 호감을 표시한다. 남녀 모두 ‘OK 버튼’을 누르면 서로의 이름과 연락처가 두 사람에게 공개된다. 이 회사의 수익은 OK 버튼을 누르는 데서 발생한다. 프로필 등록은 무료지만 OK 버튼을 누르기 위해선 3300원짜리 ‘OK 상품권’을 사야 한다. 소개팅 주선자에게 커피 한 잔 정도는 산다는 뜻에서 가격을 3300원으로 정했다. 여기에 각종 부가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비용을 더 내야 한다. ‘매력도가 높은 이성을 골라 만날 수 있는 선택권’ 같은 것들이다.

 ㈜이음의 사업 모델에 대한 평가는 후했다. 사업 첫해인 2010년 여성창업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이듬해엔 대한민국 인터넷대상에서 국무총리상을 각각 받았다. 지난해엔 코트라의 ‘나는 글로벌 벤처다’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았다.

 코트라 IT사업단 오창렬 차장은 “소셜 데이팅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 낸 걸 높게 평가했다”며 “가입자 개인정보를 최대한 보호하면서 20·30대에 집중해 최적의 상대를 고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것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외국 업체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으로 안다. 이음이 해외로 진출할 경우 코트라 네트워크를 통해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 스스로는 “고가의 결혼정보업체 서비스와 일회성 만남을 중심으로 하는 채팅 서비스 사이의 빈 공간, 결혼이 아니라 괜찮은 연애를 하고 싶은 젊은 층의 마음을 파고들어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출범 초기 연이은 수상 소식은 회사 성장에 밑거름이 됐다. 자금줄도 튼튼해졌다. 사업 시작 1년 만인 2011년 회원수 10만 명을 돌파했고, 지난해 40만 명을 넘겼다. 미래에셋을 비롯한 외부업체에서 30억원가량 투자도 받았다.

 물론 긍정적인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박 대표 개인적으론 ‘서울대까지 나왔다는 젊은 여성이 온라인 뚜쟁이를 한다’ ‘불륜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2000년대 초 등장한 아이러브스쿨, 다모임 같은 만남 주선 사이트가 수십만~수백만 명의 회원을 확보했다가 금방 사라져 간 것을 거론하며 ‘오래 유지되기 힘들 것’이란 시각을 드러내는 이도 있다. 박 대표는 ‘미혼 여부를 철저히 확인하고 개인정보 보호에 힘쓰는데 불륜 조장이란 비난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의 강신장 원장은 ㈜이음의 성공과 위기 요인을 이렇게 본다. “미혼 남녀의 갈망과 아픔이 무엇인지 섬세히 들여다보고 빠르게 감각적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성공했다. 하지만 애플이 노키아를 순식간에 제쳤듯 더 감각적인 연결자가 등장하면 언제든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박 대표는 2010년 3월 동료 두 명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뒤 게임업체 NC소프트에 들어갔다가 6개월 만에 그만둔 뒤였다. “지금의 사업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게임회사는 내게 맞지 않는 것 같았어요. 게임을 즐겨야 하는데 일로 게임을 하는 게 힘들었죠.”

 스마트폰을 활용한 소개팅은 개인적 경험에서 착안했다. “여자들은 소개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하기 쉽지 않아요. 없어 보이니까요. 소개팅이 들어와도 어떤 사람이냐고 자세히 묻기도 힘들죠. 그나마 직장에 들어가면 뚝 끊기고요. 그때부턴 결혼정보회사를 통해야 하는데 좀 편하고 쉽게 만날 수 있게 만들면 사업이 되겠다 싶었죠.”

 박 대표는 대학 시절 SK텔레콤이 주최한 신규사업 공모전(T크리에이터)에서 만난 친구, 그 친구의 형인 김도연(43) 이사와 함께 4000만원을 마련했다. 사무실 얻을 돈이 없어 지인의 사무실을 무료로 빌려 썼다. 프로그램 개발자 역시 채용할 능력이 안 돼 소프트웨어를 전공하는 친구에게 부탁했다. 시내 커피숍에서 밤새워 회의하기 일쑤였다. 처음부터 유료화를 목표로 했다. ‘수많은 사이트가 유료화한 뒤 망했다. 무료로 하되 광고를 유치하는 사업 모델이 더 낫다’는 조언도 있었다. 그래도 안정적으로 오래 가려면 유료화가 낫다고 판단했다. “무모한 도전이었고, 힘든 때도 많았죠. 다시 그런 생활을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

'글 생활 연구소'만들어 2030 분석
우여곡절 끝에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7개월의 시범서비스를 거쳐 2010년 11월 서비스를 정식으로 시작했다. 처음엔 인터넷을 기반으로 했지만 이듬해 바로 스마트폰용 앱을 냈다. 뚝심 있는 사업 추진은 학생 때의 경험 덕이었다. 그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치열하게 고민하고 일단 정해지면 끝까지 하는 성격”이라고 했다. 부모님도 그의 판단을 존중해 줬다. 박 대표는 고등학교 3학년 이과에서 문과로 바꿨다. 어려서 수학·과학을 잘해 처음엔 이과를 선택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과 인생’이 맞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입시에 실패해 재수를 한 뒤 2006년 서울대 어문계열에 입학했다. 입학해 보니 어문계열은 또 아닌 것 같았다. 2학년 때까지 전공을 택하지 않고, 여러 과목을 들었다. 언론정보, 특히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갔다. 전과(轉科)를 결심했다. 전과를 의식해 2학년 2학기 전 과목 A를 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제가 장녀예요. 장녀 책임감 같은 것도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사업을 하면서 남몰래 운 적이 수없이 많다’고 했다. 특히 사업 제휴를 위해 다른 업체 사람을 만날 때 ‘어린 여자라고 무시하는’ 느낌을 받으면 화도 나고 눈물도 났다고 한다. “나뿐 아니라 직원들까지 함부로 대하는 곳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유료화 시작 즈음에는 프로그램은 뜻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돈은 떨어져가고 가슴이 터질 듯 답답했다. 그럴 때마다 ‘하고 싶어 시작한 것이니 끝까지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박 대표는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코딩이나 회계 등은 잘 모르지만 ‘제대로 하는지’ 알아볼 정도의 공부를 늘 하고 있다. 부모님이 서점을 하는 덕분에 어려서부터 책 읽는 습관을 갖게 된 게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요즘엔 그동안 잘 몰랐던 분야의 책들을 더 많이 보는 편이다.

 여성 CEO의 장점도 있다. “상대의 감정을 남성보다 민감하게 느끼죠. 그만큼 상대의 영향을 더 받는다는 뜻인데, 제 스스로는 늘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직원의 욕망과 회사의 방향이 일치하는 게 중요합니다. 직원들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파악하려고 애씁니다.” 조직이 커지면서 역할 변화에 대한 고민도 따른다. “예전엔 제가 모든 걸 다했죠. 지금도 급할 때는 필요한 부문을 메우고 있지만 가능하면 직원들에게 위임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는 앞으로 자신과 같은 2030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더 연구해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지난해 말 ‘싱글 생활 연구소’란 부서를 만들었다. 회원 정보를 바탕으로 20·30대의 생활 패턴을 분석하는 게 일이다. 그는 “2030세대는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고 문화를 향유하는 데 익숙한 세대”라며 “어른들은 2030을 어리고 철없다고만 하지 말고 이런 장점을 잘 봐주고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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