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농축산물 유통 혁신, 이번에 제대로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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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농협 하나로마트에 들러 “현재 7단계로 복잡하게 이뤄지는 농산물 유통과정의 거품을 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앙일보가 다단계 유통과정을 추적한 결과 포기당 800원이던 월동배추가 농가→산지 수집상→중간 도매상의 전매→도매시장→납품 도매상→소매상을 거치면서 소비자 밥상에는 5000~5300원에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대형마트가 직거래하는 경우 유통구조가 3단계로 축소돼 현지 농가에는 포기당 900원이 떨어지고, 최종 소비자에겐 거의 절반 가격인 2850원에 공급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유통구조 혁신이 농축산물 가격 안정의 근본 대책이자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이다.

 이미 해법은 나와 있다. 산지 주변에 직거래 장터를 많이 세우고, 대형 물류센터를 늘려야 한다. 하지만 역대 정권들도 빠짐없이 다단계 유통의 개혁을 외쳤지만 구두선(口頭禪)에 그쳤다. 그만큼 농축산물 유통 혁신은 지난한 작업이다. 날씨와 작황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낡은 밭떼기 관행이 남아 있고, 산지 수집상·중간 도매상·도매상의 오래된 묵계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무리 농협과 유통공사가 애를 써도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농민들이 헐값에 밭을 갈아엎을 때도 소비자들은 금값에 혀를 내두르기 일쑤였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여전히 불만이다.

 그럼에도 농축산물 유통 개혁은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유통 마진이 산지 가격의 5~6배에 이르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기형적 구조를 방치할 수 없다. 일본이 현지에서 생산된 농축산물을 현지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 원칙으로 유통구조를 크게 단축시킨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우리는 전국 농축산물이 서울 도매시장에 올라와 다시 지방으로 내려갈 만큼 유통단계가 너무 길고 복잡하다. 다행히 대형마트와 프랜차이즈 업계가 직거래나 단축거래를 통해 기존 유통구조에 도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농협의 역할이다. 이미 신(信)-경(經) 분리가 이뤄진 만큼 이제는 유통단계 축소와 직거래 확대의 경제사업에 집중해야 한다. 부디 박근혜 정부가 제대로 된 농축산물 유통구조 혁신을 이루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