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위기] 아르헨 교포들 재기 의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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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반정부 시위가 폭동으로 변해 약탈행위가 벌어질 당시 한국 교민들의 피해는 모두 네건이었다. 교민규모(약 2만명 추산)에 비춰볼 때 그리 큰 피해는 아니었다.

중국인들의 피해는 훨씬 컸다. 한인들은 옷장사를 많이 하고 있는데 반해 중국인들은 빈민촌 근처에서 식품점을 많이 하고 있어서 폭도들의 표적이 됐기 때문이다.

피해를 본 한 중국인 부부는 자살을 했는데 이것을 현지 언론이 한국인으로 오보하는 바람에 국내에도 잘못 알려지는 해프닝이 있었다.

오보의 배경엔 동양계 하면 한국인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곳 사람들의 인식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우리 교민들이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보다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는 얘기다.

아르헨티나의 한인 이민사는 1965년 13가구의 영농 이민단이 열었다. 이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서쪽으로 1천1백㎞ 떨어진 라마루케 농장으로 갔다. 4백㏊의 이 농장은 당초엔 황무지 그 자체였다.

트랙터 한대 없이 곡괭이와 삽 정도만 싣고 간 이민단은 대부분 농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민촌으로 옮겨왔다.

이 무렵 파라과이로 이민갔던 사람들이 아르헨티나로 재이민을 오면서 교민의 수가 불어났다. 처음에는 먹고 살기 위해 막노동을 전전하던 교민들은 편물사업을 크게 일으켜 경제적 기반을 닦았다.

이후 교민들은 중저가 의류시장을 거의 장악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교민들의 옷가게가 밀집해 있는 아베쟈네다.온세 지구를 가보면 서울의 동대문.남대문 시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80년대 중반에는 투자이민 붐이 일면서 교민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 90년대 중반 한때 4만5천명을 헤아렸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이후 경기침체로 인해 미국.멕시코 등으로 재이민을 가는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현재는 2만명 정도로 줄었다.

요즘 교민사회 분위기는 아주 썰렁하다. 특히 교민들을 상대로 한 장사는 매출이 대폭 줄어 울상이다.

그러나 이민온 지 오래된 사람들은 89년 5천%의 살인적인 인플레에서도 살아 남았다며 이번 고비도 어떻게든 넘기면 다시 좋은 시절이 오지 않겠느냐고 스스로를 달래고 있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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