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의 힘!… 법정서 성폭행·사기 누명 벗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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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에 제출된 새로운 증거 덕분에 유죄 판결을 받았던 피고인들이 잇따라 누명을 벗었다.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李性龍부장판사)는 24일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 여종업원(19)을 성폭행한 혐의(강간치상)로 1심에서 징역 8년이 선고됐던 李모(39)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을 뒤집은 결정적 증거는 노래방의 녹음 테이프였다. 지난해 2월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 피해 여성과 李씨가 경기도 미사리의 한 노래방에서 다정하게 노래하는 음성이 담긴 테이프가 항소심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된 것이다. 피해 여성은 李씨의 노래에 맞춰 합창을 하거나 후렴을 따라 부르기도 했다.

재판부는 "사건이 생긴 다음날 서로를 '오빠''자기'라고 부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녹음 내용으로 볼 때 두 사람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라고 믿기 힘들고, 피해자의 진술도 일관되지 않았다"며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李씨는 구속된 지 8개월 만에 자유의 몸이 됐다.

또 다른 사례 하나. 사업가인 李모(65)씨는 유죄 증거였던 서류가 항소심에서 거짓으로 판명났다.

서울지법 형사항소3부(재판장 黃京南부장판사)는 24일 동업자의 수익금을 가로챈 혐의(횡령)로 징역 2년.집행유예 3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던 李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 근거는 1999년 李씨를 횡령 혐의로 고소한 동업자 金모씨가 '李씨와 수익금을 나눈다'는 내용으로 91년에 만들었다는 동업 약정서. 李씨는 "이 서류가 고소인의 필체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고소인 측은 "분명히 내가 작성한 것"이라면서 李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에 李씨 측은 10여년 전에 실제 서류를 작성했던 직장 동료를 찾아내 법정에 증인으로 세웠다.

결국 재판부는 지난달 법정에서 李씨 측 증인과 金씨에게 "약정서 원본을 그대로 베끼라"고 한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했다. 원본 필적은 李씨 증인의 것이었다.

김현경 기자 goodj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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