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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22) 대통령의 귀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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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 사건을 기각하고 나흘이 지난 2004년 5월 18일 노무현 대통령은 복귀 후 첫 국무회의를 열었다. 회의 시작 전 고건 총리(왼쪽)와 이헌재 경제부총리(오른쪽) 등이 박수를 치자 노 대통령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총리님, 요즘 시중에 이런 얘기가 돕니다.”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이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한 실장이 가지고 온 보고 서류를 읽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무슨 얘기 말입니까.”

 2004년 4월 어느 날.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총리 집무실엔 그와 나만 앉아 있었다. 누구 들을 사람도 없는데 한 실장은 목소리를 한껏 가라앉히며 답했다.

 “탄핵으로 재결이 나면 그때는 권한대행을 하는 현직 총리가 (대통령 선거에) 나올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얘기가 있습니다.”

 “절대 안 될 일입니다. 내가 권한대행으로 국가를 책임지고 관리하고 있는 사람인데 누구한테 맡기고 입후보를 합니까.”

 “아, 그것도 그렇네요. 그럼 국정 운영은 경제부총리한테 맡겨야 하는 겁니까.”

 “말도 안 돼요. 위기 관리를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내 소명입니다.”

 탄핵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 정도 지났다. 2004년 4월 15일 17대 국회의원 선거는 무사히 치러졌다. 열린우리당의 승리였다. 탄핵 역풍의 영향이었다.

 이제 정치권의 시선은 헌법재판소로 몰렸다. 노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에 대해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를 놓고 말들이 많았다. 대통령을 대신해 일을 하다 보니 TV 뉴스만 틀면 내 얼굴, 신문만 펴면 내 기사가 나왔다. 청와대 386 참모들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고 한다. “청와대로부터 압박을 받는다”는 국무조정실 간부들의 보고가 자주 올라오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헌재의 탄핵심판까지 시한이 남았지만 뭔가 총리의 향후 행보에 대해 밝힐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한덕수 실장에게 이미 “총리에서 물러나고 미국에서 공부할 곳을 물색해 달라”고 요청을 해둔 터였다. 한 실장을 다시 불렀다.

 “긴히 부탁할 게 있어요. 전에 제가 부탁드린 미국의 대학, 알아보고 계시죠? 그 사실을 언론에 흘려 주셨으면 합니다.”

 “…. 네, 알겠습니다.”

 얼마 후 신문에 기사가 났다. 4월 20일 기자단 만찬이 있었다. 당연히 그 질문이 나왔다.

 “맡겨진 역할을 수행하고 ‘재수 총리’를 졸업한다는 것은 지난해부터 해온 얘기입니다. 그때의 역할이란 게 17대 총선의 공명 관리였는데 여기에 탄핵 정국이 붙었으니 그것까지는 끝나야 할 것 같습니다. 졸업 시기는 5월 중순에서 6월 이전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5월 14일 오전 10시 헌재는 노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기각한다”고 결정했다. 63일, 무거웠던 권한대행이란 짐은 그렇게 내려놓게 됐다.

 그날 저녁 6시30분 청와대 관저에서 만찬이 열렸다. 내가 청와대에 전화로 요청해 이뤄진 저녁 자리였다. 권양숙 여사, 청와대의 김우식 비서실장, 이병완 홍보수석이 참석했다. 권한대행 기간 중 국정 처리 사항을 정리한 사무 인계서를 준비해 갔다. 딕 체니 미 부통령 방한 결과와 최근 국내 경제상황, 특히 정부 초기 만든 6자회담의 진전 상황에 대해 구두로 설명했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 고생이 크고 답답하셨습니까.”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총리께서 너무 큰 책임을 지셨던 것 같습니다. 훌륭히 국정 운영을 해주신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1년 3개월간 열심히 하느라고 했지만 별 도움을 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답을 한 뒤 본론을 꺼냈다. “저 스스로 1기 총리의 임기를 총선이 끝나고 새 국회가 개원하기 전까지로 생각해 왔고, 이제 그때가 됐으니 졸업을 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열심히 잘해 오셨는데 계속 하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노 대통령은 두 차례 만류했다. 진짜 거절의 뜻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가 후임 총리로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후임 총리 지명 시기는 20일쯤이라는 분석도 따라 붙었다. 내 대답은 변함이 없었다.

 “대통령이 큰 강을 건넜으니 말을 바꾸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새로운 국정 운영의 틀을 만드실 수 있는 편리한 시일에 졸업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노 대통령은 내 말에 공감했다. 모든 언론은 “대통령이 총리의 사의를 가납(嘉納·기꺼이 받아들임)했다”고 보도했다. 그렇게 잘 마무리 됐다고 느꼈다. 하지만 나만의 생각이었다.

정리=조현숙 기자

◆ 이야기 속 인물

한덕수

한국무역협회장. 64세.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특허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냈다. 2004년 산업연구원장으로 일하다 국무조정실장으로 발탁됐다. 이후 재정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를 거쳐 제38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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