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유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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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대구의 한 유치원 원장 A씨는 2010년 7~9월 교육청으로부터 69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저소득층 자녀의 유치원비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A씨는 이 돈을 자신에게 유치원을 넘긴 전직 원장에게 보냈다. 2008년 유치원을 인수하면서 미처 주지 못했던 인수대금이었다.

  부산의 유치원 설립자 B씨는 2009년 3월부터 3년간 수십 차례에 걸쳐 유치원 운영비 5200만원을 빼냈다. “운영비가 부족해 내 돈을 쓴다”며 유치원 통장에 개인 돈을 넣은 뒤 한두 달 뒤 더 많은 금액을 인출하는 방식이었다. B씨는 빼낸 돈의 대부분을 개인적인 용도로 썼다.

 이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해 5~7월 부산·대구·인천·대전교육청과 관할 사립유치원을 함께 감사하면서 드러난 것이다. 교과부가 일선 사립유치원을 직접 감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교과부의 감사 결과 부산·대구·대전교육청은 2009~2012년 관할 사립유치원에 대한 감사를 한 번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교육청은 매년 유치원을 종합감사하도록 내규로 정했지만 감사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시행하지 않았다. 이들 유치원이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것이다.

 대구의 유치원 17곳은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유치원 원장의 자격증을 빌려 설립인가를 받은 후 원장 자격이 없는 교사·사무직원을 원장 대리로 임용했다. 부산·대전의 유치원 5곳은 운영비 2억7000만원을 원장이나 설립자의 개인 용도로 썼다. 인천의 유치원 11곳은 원장이나 설립자의 친인척을 교직원으로 등록한 뒤 실제로 근무를 하지 않는데도 총 3억원의 급여를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과부는 규정을 어긴 유치원장과 교육청 직원 21명을 징계하고 101명에겐 경고·주의조치를 하기로 했다. 또 지원금을 유용하거나 회계 규정을 어긴 설립자와 원장 자격증을 빌려준 대여자 등 46명을 수사기관에 고발하라고 해당 교육청에 통보했다.

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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