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학교폭력 사각지대 남김 없게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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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얼마나 더 많은 학생이 죽음으로 학교폭력을 고발해야 하나. 어떤 희생이 더 있어야 가정·학교·사회의 관심과 시선이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사라지겠는가. 경북 경산의 고교생 최모군의 자살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1년여 동안 정부가 벌여온 학교폭력과의 전쟁이 실효성이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대통령까지 나서 학교폭력 근절을 약속하며 종합대책까지 만들었으나 그는 유서에서 “학교폭력은 지금처럼 해도 100% 못 잡는다”고 절규했다. 그가 주로 집단 괴롭힘을 당한 경산 J중의 19개 폐쇄회로TV(CCTV)는 구타를 당하는 장면을 비추지 못한 채 엉뚱한 곳에 설치됐다. 그런데도 해당 중학교는 “가해 학생들은 착한 아이들이다” “학생 관리에 문제가 없었다”는 말만 되뇌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청와대는 어제 긴급 4대 사회악 범정부회의를 열고 학교 내 CCTV가 비추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없애고, 화질을 개선하겠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교실 내 CCTV 설치가 학생과 교사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우선은 CCTV의 수를 늘리고, 교실까지 확대해 감시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물론 이런 시설만으로 학교폭력이 해결될 수는 없다. 학생들은 기계의 눈을 피해 또 다른 은밀한 곳을 찾아낼 것이다. 심지어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지난해 2월 최군이 다니던 중학교에 찾아와 학교폭력에 관해 토론을 벌였는데도 동료 학생들의 폭력은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보복이 두려운 아이는 학교도 정부도 믿지 못한 것이다.

 학교폭력과 관련해 자살한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듯 최군 사건에서도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 침묵했으며, 학교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학교폭력 신고 전화 117이 운영되고 신고 센터가 설치됐으나 피해 학생은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학교는 학생들의 행동 특성 등에 관해 여러 차례 조사를 벌였지만 폭력의 낌새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학교 당국의 면담과 조사가 형식에 그치는 게 아닌지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중학교가 보유한 학생 기록이 고교에 전달되지 못해 최군이 다니던 고교는 “개학한 지 얼마 안 돼 학생에 대해 잘 몰랐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런 제도적 취약점도 찾아 보완해야 한다.

 폭력의 위험에 빠진 아이들은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런 구호 수단도 가동되지 않았다. 각종 대책이 수렴되는 지점에 있는 사람은 학교 선생님들이다. 교사와 학교장들이 제자들에 대한 애정을 보여줄 각오를 다시 한번 다져야 할 때다. 단 한 명의 학생도 놓치지 않겠다는 학교의 부릅뜬 눈이 절실하다.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