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투신 매각 "처음부터 다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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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투신 매각 협상이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드러날 부채를 어떻게 보증해 주느냐는 문제가 결렬의 주된 원인이지만 AIG의 내부사정 때문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정부는 "해외매각 방침은 불변"이라며 "적어도 세곳과 새로운 인수 협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 왜 결렬됐나=정부 관계자는 "인수주체에 대한 정부와 AIG의 시각차"를 이유로 들었다. 막판 쟁점이었던 추가부채 보증범위와 관련된 부분이다.

정부는 AIG와 공동출자하므로 추가부채는 정부가 보유할 지분(45%) 정도만 책임지는 게 맞는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반면 AIG는 현대투신에 공적자금이 들어가므로 현대투신을 정부에서 사들인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AIG의 전략이 달라졌다는 분석도 있다.

AIG는 18일 "(협상이 결렬됐지만)앞으로 한국시장에서 생명보험 업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모든 기회를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주력인 보험에 승부를 걸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에서 투자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많은 것도 협상 결렬의 한 원인으로 보인다. AIG 관계자는 "협상기간 중 들어간 돈이 만만치 않은데도 결렬을 선언한 것은 잠재 부채를 안고 있는 물건은 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소송에 휘말릴 수 있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 결렬 책임은=정부의 협상능력 부재(不在)가 결렬을 부채질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AIG는 16일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때만 해도 정부는 적어도 겉으로는 여유를 보였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일곱번이나 최후통첩했다. 이번에도 그런 차원"이라며 느긋해했다. 특히 그동안 쓴 돈 때문에 AIG가 쉽게 물러서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속사정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정부는 17일 밤 부랴부랴 AIG 요구의 일부를 수용, 회사를 정리한 뒤 매각하는 방안과 새 회사를 설립해 자산과 부채를 이전시켜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응답을 보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저쪽이 받아들일 만한 수정안을 제시했는데도 결렬된 까닭을 모르겠다"고 갸우뚱거렸다. 그러나 AIG는 '확답'이 아닌 '검토'라는 의견에 짜증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협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안일하게 보고 있다가 18일 새벽 협상중단이라는 일격을 당한 것이다.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협상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했다고 책임을 물으면 누가 협상을 맡겠느냐"고 반문했다.

◇ 앞으로의 진로는=정부는 일단 AIG컨소시엄 멤버였던 윌버 로스를 주목하고 있다. 윌버 로스도 AIG 대신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협상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또 미국의 유명한 종합금융사 두곳이 인수 의사를 밝혀온 상태다.

그러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 부담이다. 정부 관계자는 "솔직히 협상을 새로 벌이는 게 쉽지 않다. 시간이 많이 흐른 것도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우리 패가 노출된 마당에 매각협상이 재개되더라도 제 값 받기가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다. 다만 증시 상황이 최근 호전되고 있는 게 유일한 위안이 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오래 끌면 시장불안요인만 커진다"며 "그동안 AIG와 협상한 내용을 바탕으로 최대한 서두를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동섭.정선구.장세정 기자 don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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