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벤처 이대론 안된다(하)

"잇따른 벤처 게이트 여파로 테헤란밸리에 돈줄이 말랐다. 몇몇 사이비 벤처 때문에 건전한 벤처기업들까지 도매금으로 피해를 봐서는 안된다."(인터넷검색도구 K사 김모 사장)

"'불순 벤처'때문에 벤처의 싹이 잘릴 위험이 있다.벤처는 대기업 중심의 우리 경제에 좋은 자극과 활력소가 된다. 벤처정책을 새로 짜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오해석 벤처지원포럼 회장)

벤처정책을 확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도 현재의 정부주도형 벤처정책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민간주도형으로 바꾸겠다고 이미 공언한 상태다. 벤처기업.단체들도 직접 지원보다는 벤처가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간접 지원하는 게 낫다고 말한다.

◇ 시장 기능을 살리자=벤처기업 수가 이미 1만개를 넘어서 성장단계에 들어선 곳이 적지 않은 만큼 창업지원 중심의 기존정책에서 벗어나 시장원리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철수연구소 안철수 사장은 "애써 개발한 제품이 팔릴 수 있도록 정부가 시장여건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 마케팅 능력 등을 검증받고 체질을 개선함으로써 '온실 속 벤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코어세스는 경쟁이 치열한 초고속인터넷(ADSL) 중계장비 분야에서 신제품 개발에 성공, 지난해 2억4천만달러를 수출했다.

또 임직원 47명의 한송하이테크는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해왔던 인쇄회로기판(PCB)장비를 하나 하나 국산화했고, 최근엔 세계 두번째로 PCB접합에 사용하는 본딩머신을 개발해 세계적인 기술업체로 인정받았다.

김옥경 한.스탠퍼드벤처포럼 회장은 "국내에도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 못지않은 기술력을 가진 벤처들이 많다"며 "금융지원.시장여건 조성 등 벤처가 자생할 수 있는 서식지(habitat)환경만 잘 조성해 주면 벤처가 우리 경제의 한 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새 틀을 짜자=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은 "다소 힘이 들더라도 정부의 직접 지원에서 벗어나야 벤처산업 전체가 산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퇴출제도를 강화해 죽을 기업은 죽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현 시점에서 체질개선을 하지 않으면 벤처산업 전체가 허물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벤처기업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모인터랙티브의 박흥호 사장도 "정부는 시장이 형성될 수 있도록 장터를 만들어 주고, 잘 돌아가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반칙하는 기업이 없는지 감시만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벤처의 기술력과 사업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벤처캐피털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또 ▶로비의 빌미가 되고 있는 벤처확인제도 개선▶사이버벤처와 진짜 벤처를 가려내는 제도적 장치 강화▶건전한 벤처에 대한 엔젤투자 등 벤처자금의 원활한 공급을 위한 제도개선도 시급하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 중기청 서영주 벤처기업국장은 "벤처투자와 관련한 부패고리 차단을 위해 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윤.염태정 기자

*** 체질개선 방안은

초등학생용 전자교재 개발업체인 V사는 지난 1998년 말 정부로부터 1억6천만원을 지원받았으나 현재 폐업 상태다. 사업 전망에 대한 평가가 엉터리였던 것이다. 영상처리를 통한 혈액 진단 시스템 개발업체 M사도 같은해 1억9백만원을 지원받았으나 역시 폐업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벤처기업에 대한 효율적이고 투명한 금융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와 관련, 중소기업청은 현재 벤처의 건전성을 평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중이다. 보다 객관적인 잣대로 자금지원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다.

산업은행은 최근 전문심사역과 산업기술부를 신설해 심사의 객관성과 기술검증을 강화하도록 했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자체 감사를 통해 벤처 투자 내역을 검토하고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한편 정부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벤처 지원에 나서면서 빚어지는 혼선도 정리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정호 박사는 "부처간 정교한 역할 분담과 함께 벤처기업 정책을 총괄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