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주민들 “잠잘 때도 입은 옷 그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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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리졸브’ 연습을 하루 앞둔 10일 오후. 북한 황해도 해안으로부터 10㎞가 채 떨어지지 않은 연평도에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7일 새벽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연평도에서 빤히 바라다보이는 바다 건너 개머리 해안포부대를 시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2년4개월 전의 포격 트라우마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일요일이면 축구를 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던 공설운동장도 텅 비어 있었다.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손순옥(41·여)씨는 “언제 북한의 포탄이 떨어질지 몰라 아이들을 밖에 내보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옥(81·여)씨는 “동네 사람들이 나를 혼자 두고 피난갈까 봐 무서워 잠도 제대로 못 잔다”고 말했다.

 옹진군청은 북한 포격에 대비해 현재 연평도 내 11개의 대피소를 모두 개방해 두고 있다. 이 중 7개는 지난해 지어져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다. 두께 60㎝의 방호벽과 돔 형태의 지붕은 중형 폭탄을 견딜 수 있다. 자가발전기·비상진료소 등도 갖췄다. 김태진 연평면장은 “지난주부터 비상근무에 들어가 방송망과 대피호 점검을 끝냈다”며 “식수와 비상식량, 모포 등이 갖춰져 있으므로 유사시 우선 몸만 피하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평도 주민들의 마음속 불안감까지 덜어주기에는 부족하다. 대피소로 이동하는 순간에는 공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민회장 신승원(72)씨는 “2010년 11월 포격 당시에는 날씨가 좋아 대부분 주민이 바닷가에서 작업 중이라 화를 피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조업에 나간 배가 적고 대피소로부터 1㎞ 이상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주민도 많아 ‘그날의 악몽’이 되살아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 주민은 당장이라도 섬을 떠날 채비를 갖췄다. 이향란(57·여)씨는 “자다가 바람 소리에도 놀라 밖을 내다볼 정도로 겁나고 무섭다”며 “피난 가려고 가방도 다 꾸려놓았고 잠자리에 들 때 옷도 안 갈아입는다”고 말했다. 손순옥씨는 “헬기 하나만 떠도 짐 쌀 생각을 먼저 할 정도로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 고 말했다. 10일은 풍랑주의보 때문에 여객선 운항이 멈춰 섬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하지만 11일부터는 연평도를 떠나 뭍을 향하는 주민이 늘어날 전망이다.

 꽃게잡이 어선들은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다음 달 꽃게 조업에 필요한 선원들이 연평도행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금을 주고 데려온 선원 중에서도 섬을 떠나는 이들이 나오고 있다. 신승원씨는 “연평도 어민들은 생계 때문에 섬을 떠나지도 못한다”며 “북한의 도발로 한 해 벌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봄 꽃게잡이를 망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종혁 JTBC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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