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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칠기·옹기·매듭 … 장인의 손맛 오롯이 우리네 생활 명품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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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호 24면

1 춘양목 조명 테이블 93X48X40㎝. 소목장 심용식 작. 2 수국혼수함세트. 소 35x23.5x19.5cm, 중 45.5x29x23.7cm, 대 59.5x35.5x30.7cm. 칠화장 김환경 작.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 하면 “어디지?” 하고 궁금해하는 이가 많을 터다.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의 분원으로, 사당역에서 나와 5분 걸음에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고전주의 건축양식을 간직한 이 미술관은 옛 벨기에 영사관이자 사적 제254호로, 2004년 문을 열었다.

‘Craft Masters Today’전, 5월 12일까지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

지금껏 뉴미디어 아트, 사진전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던 이곳은 최근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미술관 측은 “‘생활미술관(Living Arts Museum)’으로 전문화해 공예·디자인·패션·건축 등의 생활미술전시를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더불어 서소문 본관은 글로벌 네트워킹의 중심지로, 7월 개관하는 중계동 북서울미술관은 공공미술 콤플렉스로 특성화시키겠다고 덧붙였다.

3 나전대모국화만자문머릿장 74x42x60cm. 나전장 정명채 작. 4 스탠드 매듭 장식 32X170㎝. 매듭장 김은영 작(하지훈 교수 협업).

23명이 만든 200여 점 전시
5일 시작된 ‘Craft Masters Today-제17회 서울무형문화재 기능보존회 초대전’은 새로 자리매김하는 미술관의 정체성을 각인하는 전시다. 23명의 장인이 참여해 나전칠기·옹기·매듭·민화 등 전통 공예 200여 점을 선보인다.

기실 무형문화재 전시는 박물관 전시의 연장선상으로 여겨지기 일쑤였다. 문화재라는 것이 곧 과거이자, 현재와 단절된 ‘유물’이라는 인식도 크지만, 지금의 문화재 전시 형태가 틀에 박힌 탓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런 한계를 벗어나려는 시도가 역력했다. 옛 기법을 고수한 전통 공예지만 당장 거실이나 안방에 가져다 놔도 잘 어울릴 작품들을 내세웠다.

1층 전시실에 자리한 나전장 정명채 선생의 작품만 해도 그렇다. 나무에 옻칠을 하고 자개로 장식하는 방식은 그대로지만 현대적 감각을 살렸다. 장생 거북문 보석함, 8각 도화문 구절판 등은 ‘나전’ 하면 생각나는 화려함과 부담스러운 느낌을 덜었다. 무늬를 잘게 나누고 컬러톤을 은은하게 처리한 덕이다. 지름이 30㎝ 남짓한 모란 무늬 나주반도 눈길을 끌었다. 서양의 테이블보다 아담한 사이즈도 사이즈이거니와 매끈한 마무리와 실루엣이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요즘 가구 디자인과 상통한다.

소목(창호제작)장 심용식 선생의 작품은 또 어떤가. 본디 업인 창호와 나무 가리개 사이에 있는 나무 테이블은 건축가 이광만과 협업한 춘양목 조명 테이블이다. 실용적인 공예품을 만든 시도도 새롭지만 모서리를 감싸는 네모 구멍들의 크기를 달리하는 세심한 디테일에 한 번 더 눈이 간다.

2층 전시실엔 기하학적 패턴으로 흑백의 대비를 살린 장식장(옻칠장 손대현), 전통 매듭 장식을 더한 스탠드(매듭장 김은영), 창호 모양으로 멋 낸 원목 의자(소목장 김창식) 등이 눈길을 끌었다. 모두 장인들이 미대 교수나 디자이너들과 머리를 맞대 완성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물론 전부가 현대성을 가미한 건 아니다. 민화·활·악기 등 디자인적 변형의 한계가 있는 장르들은 오히려 전통의 진수를 강조했다. 특히 화려하면서도 섬세하게 제작된 악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금박으로 장식한 거문고, 나비 무늬 나전에 파란 술 매듭을 매단 해금 등은 보는 악기로서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서울무형문화재 기능보존회장이자 매듭장인 김은영 선생은 이번 전시에 대해 “유럽에선 장인들의 전통 공예가 계속 명품으로 대접받고 있다. 우리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장인이나 그들의 작업 과정에 대한 ‘스토리 텔링’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결과물만이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관람객과 전통 공예의 간극을 좁혔다면 어땠을까. 매일 오후 2시 열리는 도슨트 프로그램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월요일 휴관. 무료.

전시 참가 장인 입사장 최교준, 나전장 정명채, 소목(창호)장 심용식, 생옻칠장 신중현, 옥장 엄익평, 옹기장 배요섭, 궁장 권무석, 단청장 양용호, 악기장 김복곤, 등메장 최헌열, 초고장 한순자, 황칠장 홍동화, 민화장 김만희, 소목(가구)장 김창식, 침선장 박광훈, 은공장 이정훈, 옻칠장 손대현, 매듭장 김은영, 남태칠장 정병호, 칠화장 김환경, 송절주장 이성자, 삼해주장 권희자, 향온주장 박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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