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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파헤쳐 찾아낸 아홉 가지 인생 비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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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호 32면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수준이 있고 단계가 있다. 벼를 빨리 자라게 하려고 모판에서 뽑아내면 한 해 농사를 다 망친다.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 알랭 드 보통의『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자기계발서나 치유서에도 초·중·고급이 있다. 우리 시대 최고의 글쟁이 중 한 명인 알랭 드 보통이 1997년 세상에 내놓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How Proust Can Change Your Life)』(이하 『바꾸는』)은 고전 반열에 오른 고급형 자기계발서다. 몇 편의 소설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당시 27세의 드 보통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준 출세작이다. 드 보통은 프루스트를 알면 후회·불안·공포에 찌든 현대인들이 “시간 낭비 없이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 프루스트의 작품을 인생 지침서로 재해석한 알랭 드 보통. 2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의 국문판 표지. 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 마르셀 프루스트(오른쪽).

 『바꾸는』은 프랑스 대문호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의 1913년 작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Remembrance of Things Past)』(이하 『찾아서』)로부터 인생의 지혜를 뽑아냈다. 『찾아서』는 상당수 작가·문학평론가·학자들이 20세기 최고의 문학 작품으로 손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책이다. 드 보통 덕분에 『찾아서』는 영미권 학계와 독서계에서 새삼 주목을 받았다.

프루스트,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작가
전문가급 독자광들에게도 『찾아서』는 인내심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책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분량의 세 배다. 125만 단어, 3000페이지, 7권 분량이다. 『찾아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학·사학·철학뿐만 아니라 과학에 대한 조예도 깊어야 한다.

 인간의 의식 흐름을 집요하게 추적해 집어내는 『찾아서』는 ‘느림의 미학’을 가르친다. 프루스트는 ‘슬로 라이프(slow life)’ 운동이나 ‘멈추면 또렷이 보인다’는 테제의 원조다. 도입부를 12번 고쳐 쓴 이 소설은 예컨대 잠이 들 때까지의 장면 같은 것을 한 시간 독서 분량에 걸쳐 아주 세밀하게 묘사한다.

 프루스트가 곁에 있다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충동을 꾹 억누르며 『찾아서』를 완파(完破)한 독자들이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하는 일은? 『찾아서』를 다시 읽기 시작한다는 조크가 있다.

 프루스트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문학계의 아인슈타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프루스트는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작품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다. 비염·불면증·천식·변비·소화불량·고소공포증·광장공포증 등 각종 질병으로 평생 고생했다. 피부가 민감해 목욕 후에는 저자극성 세제로 세탁한 타월 20개로 몸을 말렸다. 사망하기 16년 전부터는 “나는 곧 죽을 것”이라며 주위 사람들을 괴롭혔다. 잠이 안 오면 열차시간표를 읽어 내려갔다. 밤낮을 거꾸로 살며 집필에 몰두했으며 여행 가는 것보다는 여행 안내책자를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드 보통은 프루스트의 관점을 이렇게 요약한다. “문제 발생 전, 고통 받기 전, 그리고 희망과 달리 일이 틀어지기 전에는 우리는 아무것도 제대로 배울 수 없다.” 프루스트 자신이 이렇게 말했다. “행복은 몸에 좋지만, 마음의 힘을 키우는 것은 슬픔이다.”

 독창적인 문학비평서로도 평가받는 『바꾸는』에서 드 보통은 난해한 프루스트를 해부한 후 인생 비법을 9개 장(章)으로 나눠 제시한다. (1)오늘날 삶을 사랑하는 법, (2)나를 위한 독서, (3)시간 관리법, (4)성공적으로 고통받는 법, (5)감정 표현법, (6)좋은 친구가 되는 법, (7)개안(開眼)하는 법, (8)행복하게 사랑하는 법, (9)책을 내려놓는 법이다.

 드 보통이 제시하는 해법 중에서도 탁견은 ‘백년해로의 비결은 불륜’이라는 주장이다. 더 정확하게는 불륜의 가능성이다. 진짜 불륜을 실천하면 가정이 풍비박산 난다. 불륜의 가능성만으로 족하다. 적당한 질투심은 습관화된 결혼생활의 활력소라는 것이다. 눈을 뜬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인가. 우리 인생에 대해 다시 보기를 하라는 것이다. 다시 보기를 하면 평범한 일상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인생에서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은 없다. 우리 인생을 제대로 못 보고, 안 보기 때문에 불만이 생긴다는 게 프루스트의 시각이라고 드 보통은 주장한다.

 드 보통의 부계 가문은 15세기 스페인에서 쫓겨나 수세기 동안 지중해를 떠돈 세파르디 유대계다. 아버지 길버트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자라나 미국에서 교육받은 후 스위스에 정착했다. 나세르의 혁명으로 이집트에서 추방됐기 때문이다. 모계는 주로 유럽 동구권에 많이 살고 있는 아슈케나지 유대계다. 8세 때 영국으로 온 드 보통은 해로(Harrow) 스쿨을 거쳐 1988~91년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프루스트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맹자·세네카·몽테뉴도 인생에 영감을 줄 수 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드 보통의 공헌은 고전을 셀프헬프(self-help) 서적처럼 읽는 방법론을 제시한 데 있다.

고전을 셀프헬프 서적처럼 읽게 도와
『바꾸는』을 읽은 후에도 뭔가 허전한 독자들을 위해서는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The Consolation of Philosophy·2000)』을 권할 수 있다. 『바꾸는』의 속편 격인 이 책은 고대 그리스의 에피쿠로스에서 니체에 이르는 철학자들에게서 마치 자기계발서 책에서 나온 것 같은 ‘어떻게(How-to)’ 지침을 추출했다. 신앙 고민이나 관심이 많은 독자를 위해서는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Religion for Atheists·2012)』가 있다.

 일부 비평가는 드 보통이 아버지의 돈다발 덕분에 문단에서 출세가도를 달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드 보통과 그 부친의 관계는 껄끄러웠다. 『무신론자들을 위한 종교』만 해도 세속주의를 강조하는 아버지에 대한 반발을 배경으로 탄생했다는 해석이 있다.

 즐거운 오늘 오후 식구들과 서점으로 달려가 『바꾸는』과 『찾아서』를 구매하고 집에 돌아와 배경음악으로 에디트 피아프의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이 졸졸 흐르는 가운데 읽는다면 어찌 감히 인생이 따뜻하고도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마치 사족처럼 프루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독서는 영적인 삶의 문지방이다. 독서는 영적인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지만 그런 삶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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