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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 교수 도쿄대 고별 강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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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재일교포 2세인 강상중 교수는 “한국은 낳아준 부모, 일본은 길러준 부모”라고 했다.

강상중(63) 도쿄대 대학원 정보학환(學環) 교수가 6일 고별 강의를 했다. 1998년 한국 국적의 재일교포로는 처음 도쿄대 정교수가 된 그는 올 4월부터 사이타마(埼玉)현 아게오(上尾)시에 있는 세이가쿠인 대학으로 적을 옮긴다. 기독교계 사립대학이다. 도쿄대 정년까진 2~3년 남았다.

 일본 교수 사회에서 최고 명예로 꼽히는 도쿄대 교수직을 던진 이유에 대해 그는 “국립대인 도쿄대보다 사립대에서 더 자유롭게 의견을 밝힐 수 있어서”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년퇴임 뒤 옮기면 갈 곳이 없어 가는 꼴이 돼 세이가쿠인대학에 실례가 된다. 폐품처리가 아니라 재생을 위해 옮기는 것”이라고 농치며 좌중을 웃겼다. 새 보금자리인 아게오시는 그가 젊은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폐품수집상을 아버지로 둔 재일교포 2세로 독일 뉘른베르크대에서 정치사상사를 전공한 그는 일본 지식인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전후 일본 사회와 동북아 문제를 비판적 시각으로 분석하고 지적하면서다. TV아사히 등 방송사 메인 뉴스의 단골 해설자였다. 일본에서 100만 부 넘게 팔린 『고민하는 힘』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냈다.

 이날 퇴임 강의엔 200명 가까운 대학원생과 외부 손님들이 몰렸다. ‘지금부터의 동북아시아’란 제목의 강의에서 강 교수는 ‘동북아 허브’로서의 한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유라시아라는 큰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가 동북아의 중심이다. 위치적 요인뿐 아니라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주변 대국과 모두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건 한국뿐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유럽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완충 역할을 한 베네룩스(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같아야 하며 그런 힘도 갖고 있다.”

 일본에 대해서도 그는 “동북아 허브로서 한국의 위치를 이해하고 지원하는 게 일본 국익에도 부합한다”며 “독도문제에 대해서도 정치적·전략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고조된 동북아 위기와 관련, “미국과 북한간 직접 협상이 빠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엔 시작될 것으로 본다. 미·북간 양자 협의, 여기에 중국과 한국을 더한 4자 협의, 기존의 6자회담까지 중층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새 정부를 향해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남북관계가 정쟁의 도구가 되는 상황을 탈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의에 앞서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강 교수는 “아베 정권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압도적 다수를 점하게 되면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 사회의 우경화 문제에 대해선 “낮은 투표율을 고려하면 지난 총선에서 자민당에 투표한 국민은 전체국민의 25%정도”라며 “압도적인 수의 국민이 우경화됐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재일교포로서의 어려움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처음 한국에 갔을 땐 ‘반 쪽발이’란 이야기도 들었다. 한국이 낳아준 부모라면 일본은 길러준 부모다. 양쪽이 싸우면 아이들이 가장 힘들다. 양국 모두를 위해 노력하겠다.”

글·사진 도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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