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W 호가 10배 조작’ 1억원 횡령한 ELW 전문가 기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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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W 전문가’로 증권방송에 출연 중인 정모(35)씨는 2010년 사업가 김모(45)씨에게 증권계좌를 위임받았다. 김씨의 10억원을 ELW(주식워런트증권) 상품에 투자해 고수익을 올려주기로 한 것.

그러나 빚더미에 앉은 정씨는 속내가 달랐다. 김씨가 사업차 인도네시아에 나간 틈을 타 계좌에서 거래 대금을 빼돌리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일반 투자자들이 거의 거래하지 않는 H사 콜 ELW를 골랐다. 호가 조작을 위해서다. ELW에는 호가 제한 폭이 없는 점을 노렸다.

먼저 자신의 계좌로 LP(유동성 공급자)가 제시한 주당 90원에 물량을 샀다. 그런 뒤 매도 호가를 매수가의 10배로 부풀렸다. 그는 주당 900원에 매도 주문을 걸었다. LP가 추격해 호가를 올리자 이번엔 동시 접속해둔 김씨 계좌로 LP 물량을 매수했다.

그리고 LP가 더 이상 매도 호가를 내지 않기를 기다렸다. 이후 4초, 일시적인 호가 공백이 발생했다. 정씨는 재빨리 김씨 계좌로 자신이 설정한 ‘뻥튀기 호가’에 11000주를 매수했다. 정씨는 매매 차액을 챙겼다.

서울 남부지검 형사5부(부장 김홍창)는 ELW 상품의 호가를 10배로 조작해 관리하던 고객의 돈을 빼돌린 혐의(업무상 횡령)로 A투자자문사 팀장 정모(35)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1일 밝혔다. 정씨는 2011년 8~11월 시중 7개 콜 ELW에서 매도 호가를 10배 올려 모두 1억 3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 정씨는 “걸리면 매도가에 실수로 0을 더 넣어 잘못 거래됐다고 하려 했다”고 진술했다.

정씨의 범행은 한국거래소가 2011년 11월 ‘이상 거래’로 처음 적발했다.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자금 세탁과 재산 증여에도 용이한 부정거래”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범행 수법인 호가 조작에 포괄적인 횡령 혐의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이지은 기자

☞ELW(Equity Linked Warrant, 주식워런트증권)=주식 등 기초자산을 미리 정한 만기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사고 팔 수 있는 권리를 갖는 유가증권. ELW 보유자는 만기 평가가격과 설정한 행사가격의 차이만큼 이익을 취한다. 하지만 평가가격이 불리해질 경우 매수 금액만큼 손해를 본다. 상하한가 제한이 없어 수익도 손실도 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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