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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女구단 "야구하다 유산할 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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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여성 사회인 야구단인 블랙펄스가 201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하는 대표팀의 맹활약을 기원하며 WBC를 그렸다. 블랙펄스는 2011년 7월부터 지금까지 백전백승의 ‘최강 여성팀’이다. [김성룡 기자]

“나이스 캐치! 원 바운드 더요!”

 높고 앙칼진 목소리가 그라운드를 가른다. 지난 24일 오후 1시 서울 양천구 신원중학교 운동장. 야구 글러브를 낀 여성 10여 명이 빠르게 뛰어가더니 뜬공을 홱 낚아챈다. 옅게 화장한 얼굴이 금세 땀과 흙먼지로 얼룩졌다.

 “이제 타격 연습 하러 가자.” 점심식사도 잊고 연습장으로 향하는 이들 옷에 새겨진 글자는 ‘그라운드의 흑진주들’이라는 의미의 ‘블랙펄스(Black Pearls)’. 다음 달 열리는 전국 여성야구대회(중견 제약회사 주최 CMS배)를 앞두고 주말마다 강행군을 하고 있다.

 2011년 7월 이후 열린 전국 여성야구대회에서 단 한 번도 진 적 없는 백전백승의 여성 사회인 야구단이다. 지금까지 30연승. ‘여자’라서 남몰래 품어야 했던 야구에 대한 열정만으로 여기까지 왔단다.

 블랙펄스는 2008년 선수 10명으로 출발했다. 명품 가방보다 야구가 좋았던 그녀들. 어느덧 26명이 모였다. 야구에 미쳐 이 팀에 나란히 입단한 딸 부잣집(4명)의 두 자매는 지지부진하던 여성 야구의 기록을 많이 갈아치웠다. 막내 동생 이민정(30)씨는 유격수이자 현 감독이다. 그는 2011년 계룡시장기 대회에서 최고 9할9리라는 타율을 기록했다. 투수인 언니 이유영(33)씨는 지난해 KBO총재배 쟁탈전에서 7이닝 163개라는 투구 수를 기록했다.

 이런 실력임에도 “여자가 웬 야구를?”이라는 듯한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은 여전히 견디기 힘들다. 2010년 선수로 활동하다 임신한 최혜진(33)씨는 “야구를 하다 유산할 뻔하자 집에서 말려 2년간 쉬어야 했다”고 털어놨다. 팀의 맏언니인 강선미(41)씨는 집에서 단식투쟁까지 했다. 강씨는 “남편이 군산에서 하는 시합에 못 가게 해 3일을 굶고야 아이들까지 데려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심한 부상을 당할 때면 가족들이 야구를 하지 말라고 할까 봐 숨겨야 했단다. 2006년 광대뼈 부상으로 야구를 그만뒀다가 블랙펄스로 복귀한 주장 박유나(29)씨는 지난해 10월 또 눈과 광대뼈를 다쳤다. 박씨는 “당시 여자로서 얼굴을 다쳐 속상한 건 둘째고 걱정하는 어머니가 모르도록 며칠을 친구 집에 머물며 치료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들을 버티게 한 건 블랙펄스라는 ‘가족’이다. 신상민(52) 총감독은 “지방 출장을 갔는데 모든 선수의 응원가를 호텔 달력 뒷면에 적어 갖고 나가 경기장에서 번갈아 불러 주더라”며 “남자팀 같은 스타 플레이는 아니더라도 여자들만의 강한 팀 플레이가 이런 거구나 했다”고 소개했다.

 여성 야구도 동호회 수준에서 벗어나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한 단계에 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팀의 유일한 외국인인 일본인 호소야 마리코(39)는 “일본처럼 어린 여성 선수들을 길러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여성 야구에 대한 지원은 아직 부족하다. 곽대이(30) 전 감독은 “자비로 장비를 사고 출장비를 조달하는데 구장 확보마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이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거는 기대는 컸다. 이들은 “대표팀이 단합의 감동을 보여 달라”고 했다. 이민정 감독은 “대표팀에 류현진 등 에이스 선수들이 빠져 쉽지 않겠지만 훨씬 열악한 여성 야구도 단합으로 버텼다”며 “진정한 단합을 통해 ‘야구는 9명이 같이하고 공은 둥글다’는 야구의 진리를, 거기서 나오는 힘을 꼭 보여 달라”고 주문했다.

글=이지은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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