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수학] 회문(回文) 숫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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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3면

앞으로 읽으나 뒤로 읽으나 같은 문장을 회문(回文)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소주 만병만 주소'같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앞뒤가 대칭인 숫자를 '회문숫자'라 한다. 지난해(2002년)가 바로 회문숫자의 해였다. 다음에 올 회문숫자 연도는 2112년. 이렇게 1백10년 만에 회문숫자의 해가 돌아오기에 수명을 연장시키는 획기적인 방법이 출현하지 않는 한 일생에서 회문숫자의 해를 두번 맞이하기는 어렵다. 수학자들은 여러가지 계산에 의해 회문숫자를 만드는 법을 생각해 왔다. '47+74=121' 처럼 어떤 수와 그 수를 뒤집은 수를 더했을 때 회문숫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39+93=132'와 같이 한번에 회문숫자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뒤집어 더하기를 한번 더 되풀이하면 '132+231=363'으로 회문숫자가 되기도 한다.

뒤집어 더하기를 아주 여러번 해야 하는 숫자도 있다. 예를 들어 89로 회문숫자를 만들려면 뒤집어 더하는 과정을 25번 반복해야 한다. 극단적인 예는 1백96이다. 뒤집어 더하기를 9백50만번 해서 4백90만자리 숫자까지 계산해 보았지만 그래도 회문숫자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12×21=252'와 같이 뒤집어 곱하기를 해서 회문숫자를 만들 수 있다. '77×78=6006'은 연이은 숫자를 곱해 회문숫자가 되는 경우다.

또 11, 111과 같이 1로만 이뤄진 수를 제곱하면 회문숫자인 121, 12321이 된다. 단, 1이 9개를 넘으면 해당되지 않는다.

수학자들은 왜 이렇게 갖은 방법으로 회문숫자를 만들어 봤을까. 솔직히 말하면 뭔가 신기한 것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호기심 때문이다.

예를 들어 1년을 나타내는 '3백65'는 1백과 1백21과 1백44의 합인데, 이는 각 10.11.12의 제곱이다. 그렇게 놓고 보니 3백65에 뭔가 심오한 뜻이 있어 보이지 않는가.

이와 같이 수에 숨겨진 성질을 탐구하는 것은 천재 수학자의 일화에 자주 등장한다. 근대 인도의 수학자 라마누잔이 병석에 누워 있을 때, 문병을 간 사람이 자신의 차 번호인 '1729'가 별 특징이 없는 수라고 했다.

그러자 라마누잔은 몸져 누워 있으면서도 "1729는 9와 10을 각각 세제곱한 수의 합이자, 1과 12를 각각 세제곱한 수의 합"이라며 "1729는 이렇게 두가지 다른 세제곱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작은 수"라고 했단다. 세계적인 수학자가 되려면 수의 본질을 꿰뚫는 그 정도의 직관은 가져야 하나 보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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