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지금 그들은 무엇을?

중앙일보

입력 1966.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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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베를린」에 집중하는 탄우 속에서 「히틀러」는 15년간 동거한 애인 「에바·브라운」과 자살 몇 시간 전에 지하호 안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것은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이 때문』이라고 추리하는 사람도 있다. 「에바」의 「앨범」에는 「히틀러」에게 안긴 귀여운 사내아이의 사진이 수 백장 붙어있다. 이 아이는 어떻게 되었는가? 지금 살아있으면 26세 정도. 「에바」가 이 아이를 데리고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증인도 있으나 「에바」 의 양친은 이를 전적으로 부인하고있다. 「히틀러」의 아이는 자기가 누군지를 알고있을 것인가? 「나폴레옹」의 아이처럼 아버지를 상기하지 않으려 하고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히틀러」의 이름이 자랑스럽게 이야기될 날을 남몰래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나찌스」의 다른 수뇌들에 관해서는 「히틀러」의 아이 같은 신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때 세계를 뒤집은 「나찌스」의 간부였던 부친들과는 관계없이 그들의 아들딸들은 지금 각기 정상적인 시민생활을 「유럽」 한 구석에서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히틀러」라는 세기의 괴물의 숙명을 진 어두운 그림자가 붙어있는 『「히틀러」의 후예들』이라 할 것이다.
악명 높은 「게슈타포」(비밀경찰)의 장관 「하인리히·히믈러」는 「나찌스」 제2인자로서 죄 없는 수백만의 사람을 강제수용소·시체 처리실·「개스」실 등으로 보내는 조직을 기획, 아무런 주저도 없이 실행한 냉혹한 이었다. 이 자의 유일한 후예는 그 이름을 「구들룬·히믈러」라고 한다.
아버지의 악업의 갚음 때문인지 그녀는 아직도 공포를 느끼는 생활을 하고있다. 나는 그녀의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놀랐다. 「아파트」는 문자그대로 「하인리히·히믈러박물관」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그의 사진은 물론 「메달」 훈장 군복 단검 등 「히믈러」의 유물로 메워져 있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직접 찾으러 나서서 모은 것이다. 『개중에는 굉장히 비싸 그것을 입수하기 위해 몇 주일 간 저녁까지 굶은 적도 있어요.』-때로는 「스웨덴」 영국 「프랑스」에도 발을 뻗쳤다. 그리고 지금은 아버지에 관한 비밀서류철을 입수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갈 계획까지 하고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아버지를 자랑으로 하고 있어요. 나의 가명도…』 그녀는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성명을 갈기 싫다』는 이유로 결혼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그녀는 지금 아버지의 전기 저술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래 죄가 없기 때문에 변호할 필요도 없어요. 다만 아버지의 진실을 세계의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쓰는 거예요. 언젠가는 「나폴레옹」에게 부여된 존경의 염을 갖고 사람들이 「히믈러」의 이름을 부를 때가 올 거예요.』
1945년 그녀가 15세 때 자살한 아버지에 관해서는 그녀는 거의 아는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 대한 자랑은 버리지 못한다.
이러한 그녀에겐 과거가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저주하고 있다.
그녀는 「히믈러」라는 성의 십자가 때문에 정착한 일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신원을 안 어느 백화점의 동료 점원은 그녀의 해고를 요구했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아우슈비츠」로 보낸 마귀의 딸이 있는 점방에서 물건은 사고싶지 않다』는 손님 때문에 해고된 적도 있다.
신문이나 주간지에 그녀의 사진과 기사가 실렸기 때문에 당장 해고된 적도 있었다.
머리 모양을 갈고 주거를 전전하며 하녀 사무원 비서 점원 등 얼마나 많은 직업을 갈았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겨우 생활이 안정된 것은 최근 2, 3년이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과거의 어떠한 박해도 그녀에게 영향을 줄 수는 없었다.
지금 아버지의 박물관을 충실히 하고 아버지의 오명을 씻기 위해 그녀는 그 일생을 바치고 있다. 그녀는 비통한 얼굴로 말했다. 『나의 아버지는 결코 절망이란 것은 모르는 사람 이예요. 아버지가 자살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아요. 누군가가 아버지를 죽였을 거예요.』 -외지에서- (계속) <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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