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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실 당번 근무 자청 “끊임없는 개혁 필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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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전날인 8일 오후 2시 서울 자양2동 동부지검 민원봉사실. 한 남성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적힌 노란색 어깨띠를 두르고 앉아 있었다. 얼마 후 민원인이 두툼한 서류를 들고 찾았다. 자신이 고소한 사기사건을 무혐의 처리한 데 대해 검찰에 따지러 온 것이다. 민원실 근무자는 “저분에게 상담을 받으라”고 안내했다. 어깨띠 남성은 “내가 동부지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명관(54·연수원 15기) 검사장이었다. 민원인은 1시간 가까이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 검사장은 끝까지 얘기를 들은 뒤 “일목요연하게 사건을 정리한 뒤 수사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한명관 동부지검장이 8일 오후 지검 민원실에서 민원인과 상담하고 있다. [사진=최정동 기자]

한 검사장은 지난해 11월 동부지검장으로 부임했다. 현역 검사의 여성 피의자 성추문 사건으로 전임자가 물러난 뒤 긴급 투입된 경우였다. 부임 후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검사와 수사관이 돌아가면서 1일 민원실 근무를 하도록 했다. 추락한 검찰 신뢰도 되찾고, 민원인들에게 다가가려고 내놓은 조치 중 하나였다. 이날 한 검사장은 3명의 민원인과 상담했다.

그의 민원실 당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9년 대전지검, 2011년 수원지검 등 그가 검사장으로 나간 지검마다 했다. 그는 “민원실 직원들이 난이도가 높은 민원사항이면 ‘검사장의 민원실 근무일에 다시 오라’고 하더라”며 웃었다.

그는 또 검사가 사건 처분을 내리기 전 피해자·피의자·고소고발인에게 내용을 미리 설명해 주도록 했다. 수사 과정에서 투명성을 확보하는 목적이었다. 동부지검 직원들은 “부지런하고 아이디어가 많아 모시기가 쉽지 않은 상사”라면서도 “하지만 합리적인 분이라 그리 힘들지 않다. 직원들 의견도 타당성이 있으면 잘 수용한다”고 말했다.

성추문 사건 이후 동부지검의 분위기는 흉흉했다. 부임 뒤 한 검사장은 검사·수사관은 물론 환경미화원·방호원·공익근무요원 등 지검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과 식사를 같이 하며 대화를 나눴다. 이 같은 소통 노력 덕분에 동부지검 구성원들의 사기는 다시 올라가고 있다.

한 검사장은 “민원상담을 해보면 대부분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못해 처음부터 일이 그릇된 사례가 많았다”며 “서민에게 문턱이 높은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법무부 법무실장에 있으면서 ‘법률 홈닥터’를 도입했다. 변호사가 지방자치단체 등에 상주하면서 서민에게 무료 법률상담을 해주는 제도다. 지난해 본격 시행돼 현재 전국 20개 지자체에서 법률 홈닥터가 활동 중이다.

한 검사장은 “검사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많은 권한을 갖고 있다. 그 권한을 행사하기 전에 왜 이런 힘이 주어졌는지 스스로 물어보는 게 검찰 개혁의 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결국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 검찰도 일조해야 한다. 그러려면 끊임없는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 검사장은 서울 성동고와 서울대 법대를 거쳐 1983년 사법시험 25회에 합격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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