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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새가 뼛속까지 비우듯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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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호 31면

봄비가 자박하게 땅을 적신다는 우수(雨水)가 지나니 차갑기만 하던 바람살이 한결 온유하다. 봄은 우주의 기운을 따뜻하게 돌리는 신기함이 있다. 이즈음 학교 도서관 계단을 넘어 멋진 책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도연』을 빌렸다. 곤줄박이·동고비·박새·청딱따구리 등과 그밖의 많은 새들이 사는 모습을 수십 년 관찰해온 스님의 글이다. 먼 길을 가려면 앞산과 시냇길을 건너 지름길을 일견하듯, 한 해 살림살이는 새해 맞이하는 봄의 가벼운 발걸음에 달렸다.

세상이 분분해도 산의 맑은 기운을 좋아하는 무심도인들은 마음 바라보기의 고요함에 중심을 잡고 오로지 본분사에 매진하는 것도 봄 향기다. 이 책에서 내 영혼을 차분히 가라앉힐 맑은 글은 뭐가 있을까? 책장을 넘기며 음미해보니 ‘새는 멀리 날기 위해 뼛속까지 비운다’는 단 한 줄이었다. 겨울 철새들은 지구 북쪽 시베리아에서 출발해 한반도를 지나게 되는데, 오는 도중 수많은 철새들이 피로와 굶주림에 지쳐 절반은 땅에 떨어져 죽고 만다고 한다.

평소 날개 근육을 단련하고 몸을 가볍게 한 새만이 멀리 날아 목적지에 닿게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철새는 배불리 먹는 것도 단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간이 배워야 할 대상이 어디 새들뿐이겠는가. 기도를 하는 수행자들의 얼굴은 맑고 밝으며 무심하기까지 하다. 내가 아는 선배는 기도 기간 중 육식이나 잡식을 일절 먹지 않는 것으로 조행을 실천한다. 이것은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운 ‘내공수행’이다. 그를 볼 때마다 ‘무아일념 청정심(無我一念 淸淨心)’이란 글이 젖어든다.

사람들은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를 부러워한다. 밭가의 종달새도 그렇거니와 산을 넘어온 파랑새도 마찬가지다. 자유와 희망은 인간이 꿈꾸어온 원초적 본능이기 때문이다. 소태산 박중빈(1891∼1943) 대종사는 법문에서 “사람 가운데 하늘 사람과 땅 사람이 있나니 하늘 사람은 항시 욕심이 담박하고 생각이 고상하여 맑은 기운이 위로 오른다”고 말했다. 생각이 있든 없든 간에 사람들은 누구나 가벼운 삶을 살고자 하면서도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지고 인생의 길을 걸어갈 때 날개가 젖은 새처럼 결코 가벼울 수가 없다.

신라의 원효는 ‘발심수행장’에서 우리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중생중생(衆生衆生)이 윤회화택문(輪廻火宅門)은 어무량세(於無量世)에 탐욕불사(貪慾不捨)니라.” 깨달음을 얻지 못한 중생은 덧없고 끝없는 윤회 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화택(불구덩)에 머물고 있다. 이것은 오직 탐욕을 버리지 못한 까닭이다.

오늘 나는 무엇을 깨달아 샘물 같은 맑음을 세상에 전할 건가. 새처럼 가볍고 하늘 기운처럼 맑은 마음으로 세상에 노니는 법을 얼마나 체득하고 있는가? ‘삶’은 마음이든 물질이든 가벼워야 한다. 옛 중국 선승 조주(778~897)는 제자들에게 헛된 잡념 끌어안지 말라며 넌지시 차 한 잔을 권했고, 임제의현(?∼867) 역시 ‘착심에서 마음을 내려 놓으라’며 혼몽한 수행자들에게 방망이를 들이댔던 것이다. 따뜻한 봄빛이 조금 일궈 놓은 마음 새싹을 얼마큼 붙잡고 있다.



정은광 원광대학교 미술관 학예사. 미학을 전공했으며 수행과 선그림(禪畵)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마음을 소유하지 마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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