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앙숙들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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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일본 대표팀이 일본 미야자키 선마린스타디움에서 러닝을 하고 있다. 아베 신노스케(맨 앞)가 주장을 맡았다(사진 왼쪽). [사진 스포츠호치] 한국 대표팀이 22일 대만 도류구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대표팀의 목표는 일본을 꺾고 우승하는 것이다(오른쪽). [도류=김민규 기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야구 팬들에게 최고의 축제인 동시에 전쟁이다. 특히 역사적·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국가 간의 경기는 군대의 대리전 같은 느낌을 줄 때도 있다. 선수들은 조국의 명예를 가슴에 새긴다. 이기면 영웅 대접을 받고, 지면 패잔병처럼 초라해진다.

 한국이 이번 3회 WBC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1·2회 대회 챔피언 일본을 넘어야 한다. WBC 한·일전은 항상 뜨겁고 극적이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통치 지배를 받은 한국은 스포츠 종목 대부분에서 극일(克日)에 성공했다. 그러나 야구만큼은 일본에 미치지 못했다. 2006년 1회 대회를 앞두고 일본 대표팀의 리더 스즈키 이치로(40·뉴욕 양키스)가 “(한국이) 앞으로 30년 동안 일본을 넘보지 못하게 하겠다”고 도발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그러나 WBC를 통해 양국은 최고의 라이벌이 됐다. 한국은 일본과 1회 대회 때 2승1패, 2회 대회 때 2승3패를 기록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선 일본을 두 차례나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일본전에서 이승엽(37·삼성)·김태균(31·한화)이 홈런을 치면 ‘극일포’가 됐고, 봉중근(33·LG)이 호투하면 ‘봉중근 의사’가 됐다.

 이번 한·일전은 2라운드(3월 8~12일)에서 열릴 가능성이 높다. 둘 다 4강에 올라간다면 미국에서 붙을 수도 있다. 이승엽은 “일본을 만나면 집중력과 정신력이 더 생긴다. 좋은 승부를 펼치고 싶다”고 했고, 포수 강민호(28·롯데)는 “결승전에서 꼭 일본을 이기고 싶다”고 벼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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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은 중국과의 맞대결을 기다리고 있다. 양국은 서로의 정부를 인정하지 않을 만큼 대립하고 있다. 주요 2개국(G2)을 자처하는 중국은 미국과 함께 스포츠 강대국으로 꼽힌다. 대만은 ‘국기(國技)’ 야구만큼은 중국을 앞선다고 자부했지만, 베이징 올림픽과 2009년 WBC 1라운드 예선에서 중국에 패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대만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왕첸밍(33)과 궈훙즈(32) 등을 불러들여 대표팀을 구성했다. 한국과 함께 B조에 속한 대만은 2라운드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지만, A조에 속한 중국이 일본·쿠바를 꺾고 2라운드에 올라갈 확률은 크지 않아 보인다.

 ‘야구 종주국’ 미국과 ‘아마 최강’ 쿠바도 앙숙이다. 미국은 쿠바가 50년대 사회주의 국가를 선언한 뒤로부터 경제적 제재로 압박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위가 낮아졌지만 야구에서 라이벌 의식은 여전하다. A조 쿠바와 D조 미국의 대결은 결선 라운드에서 열릴 수 있다. 양국은 WBC 맞대결이 없고,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쿠바가 두 차례 다 이겼다.

 축구 강국 스페인은 극적으로 WBC 본선에 올라 C조에 속했다. 같은 조에서는 스페인의 식민 통치를 받았던 베네수엘라(1522~1811년)·푸에르토리코(1493~1898년)·도미니카공화국(1492~1795년, 1809~1822년) 등 야구 강국들이 잔뜩 벼르고 있다.

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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