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남윤호의 시시각각

어지간히 드신 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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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윤호
논설위원

전관예우(前官禮遇)란 말의 원조는 19세기 말 제국주의 일본이다. 당시 뚜렷한 업적을 낸 고관대작에게 퇴임 후에도 현직과 같은 대우를 해주는 관행이 있었다. 총리, 각료, 그리고 일왕의 자문역인 추밀원 의장 등이 그 대상이었다. 일본어 발음으론 젠칸레이구, 현대 일본에선 거의 사어(死語)가 됐다.

 이게 우리나라에선 다른 뜻으로 변형돼 지금도 흔히 쓰이고 있다. 고위 판·검사가 퇴임 직후 근무지에서 굵직한 소송을 싹쓸이하거나, 유리한 판결을 얻어내려는 법조관행을 가리킨다. 퇴임 후 고액 연봉을 받는 자리로 옮기는 고위 공직자들의 ‘빛나는 재취업’을 뜻하기도 한다. 장·차관은 물론 국무총리·부총리도 퇴임 후 대형 로펌에서 따뜻한 대우를 받는다.

 그럼 로펌이 무슨 공직자 휴양소인가. 대우해준 이상으로 얻어낼 게 있기에 그러는 것 아니겠나. 당사자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훌륭하다. 공직의 전문성을 살려 민간에 기여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공직 시절의 인맥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사적 이익의 대리인으로 활동한다는 게 문제다. 그럴 때 공(公)보다 사(私)가 앞서는 법이다. 게다가 관운 억세게 좋은 분들은 그러다가 또 공직을 맡으려 한다. 그래서 자주 시빗거리가 되곤 한다.

 새 정부의 장관 후보자들도 그런 논란을 비껴가지 못한다. 과거 인사검증 때 나타난 고위 법조인의 퇴임 초 몸값은 대략 월 평균 1억원이었다. 퇴임 직후 일정 기간의 수임료나 로펌 보수를 보면 그런 계산이 나온다. 곧 국회의 인사청문회에 설 장관 후보자 가운데도 이 범주에 드는 분이 있다고 한다.

 물론 본인은 능력과 실적에 따른 정당하고 적법한 보수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보통사람의 생활감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액수다. 월 1억원이 뉘 집 개 이름인가. 국세청이 집계한 근로자 상위 10%의 평균 연봉(9500만원)보다 많다. 서민과 중산층엔 핵폭탄급 박탈감을 안겨줄 만하다. 이런 심리를 삐뚤어진 국민정서 탓으로 가볍게 돌릴 문제가 아니다.

 전관예우란 예우를 받는 전관, 예우를 해주는 로펌이나 기업, 그리고 전관의 말을 들어주는 현직이 골고루 윈윈하는 게임이다. 전관은 떼돈 벌어 좋고, 로펌이나 기업은 목적 달성할 확률 높아 좋고, 현직은 장래의 예우를 찜해 놓아 좋다. 셋의 이익이 꽉 들어맞은 철의 삼각구조다. 그 한 축에 선 로펌이나 기업은 서민 편일 수 없다. 뭉칫돈을 턱턱 낼 수 있는 이가 과연 누구겠나.

 물론 공직자들에게도 반박논리가 있다. 공무원들은 그만두면 다 모래밭에 코 박고 죽으란 말이냐며 반발하던 장관도 있었다. 실제 수요가 있는 한 현실적으로 원천봉쇄할 수는 없다. 선을 그어 얼마만 받으며 먹고살라고 할 수도 없다.

 크게 보면 전관예우는 우리 사회의 뒤틀린 자화상이다. 연고주의 풍토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엘리트들의 집단적 사익 추구 행위다. 누가 그 입장에 서더라도 결과는 비슷할 것이다. 다음 공직을 의식해 떼돈 벌 기회를 마다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공무원이 되려는 젊은이들마저 전관예우를 장차 신분상승의 사다리로 바라보지 않을까 걱정될 지경이다. 오죽하면 전관예우를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라고 보는 학자도 있지 않나.

 전관예우가 구조적 문제라면 간단히 없애긴 어렵다. 장기 로드맵을 수없이 만들어도 모자랄 판이다. 당사자인 전관만 쪼아대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전관예우는 결국 현직이 일으키는 문제다. 전관이 아무리 부탁해도 현직이 법대로 하면 된다.

그렇다면 정권 초 힘 있을 때 대통령이 ‘전관예우 비확산 조치’라도 선포해 공직사회의 긴장감을 높일 필요가 있다. 그에 앞서 퇴직 후 어지간히 드신 분들 스스로 자리 욕심을 버리는 것도 중요한데, 그런 염치 차리는 분은 영 안 보인다.

남윤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