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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 실패,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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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김황식 국무총리는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나와 “그간 대화와 제재 투 트랙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는데 실효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을 명백히 인식한다”고 말했다. 20년에 걸친 북한 비핵화 노력이 물거품이 돼 버렸음을 자인한 것이다.

 김 총리는 이어 “정부가 포용정책을 취하건 강경정책을 취하건 북한은 자기 나름대로의 전략과 목표를 밀고 나갔다. 어떻게 하는 게 (북핵 도박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지 새 각도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총리의 발언엔 북핵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시각, 전략 실패에 대한 반성과 고민이 녹아 있다.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며 핵 위기를 고조시켰을 때만 해도 북한은 핵물질도, 장거리 미사일과 같은 운반 수단도 갖지 못했다.

그러나 20년 후인 지금은 세 차례의 핵실험을 했고 장거리 발사체 은하 3호까지 보유하게 됐다. 북핵이 실존하는 위협이 돼 버린 것이다.

 북한의 핵 의지를 과소평가한 안이한 인식과 일관성을 상실한 오락가락한 역대 정부의 리더십, 북핵의 심각성을 간과했던 국민적 무관심이라는 3박자가 겹쳐 북한이 핵 도박을 벌일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을 마련해 줬다는 지적이다.

 이수혁 6자회담 초대 수석대표는 “북한은 처음부터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는데도 북한이 포기할 것으로 진단했으니 처방부터 잘못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NPT 탈퇴(93년)→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공개(2002년)→영변 원자로 플루토늄 재처리(2005년) 등 북한은 일관되게 핵 개발을 추진했다. 그런데도 2005년 방북했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을 부각했다. 이듬해 10월 북한은 보란 듯이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윤덕민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한의 핵 의지는 분명했는데도 대가를 주면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본 게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5년마다 정권이 바뀌면서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준 것도 북한의 오판을 불렀다는 지적이다. 북한 붕괴론(김영삼 정부)→햇볕정책(김대중·노무현 정부)→대북 원칙론(이명박 정부)으로 갈팡질팡하는 사이 북한은 핵 야욕을 키웠다. 북한은 현재 7개 안팎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40㎏, 매년 2기의 우라늄탄을 만들 수 있는 2000기의 원심분리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권마다 달라지는 대북정책은 효율적인 국제 공조로 이어지지 못했고 북핵 문제에서 한국이 이니셔티브를 쥐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윤 교수는 “6자회담까지 만들어졌지만 중국은 북한의 체제 안정을 전략적으로 중시했고, 미국은 서서히 비핵화보다 확산 방지로 전환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며 놀랍게도 일본은 북한이 어려웠던 90년대 대규모의 쌀을 제공해 전열을 흩뜨려 놓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의 외교적 미숙과 전략 부재를 지적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핵에는 핵이라는 군축협상이 가장 효과적이나 우리는 비핵화 공동선언으로 미군 전술핵이 빠져나가 마땅한 대응수단마저 갖지 못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채병건·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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