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살생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한명회는 계유정난(癸酉靖難.1453년)으로 단종의 권력을 찬탈한 수양대군의 1급참모다. 수양대군은 권력 장악의 최대 장애물인 김종서를 죽인 뒤, 바로 단종임금에게 정승.판서들을 입궐토록 어명을 내리라고 협박했다.

수양="전하, 조금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승지를 시켜 즉시 역적의 무리들을 주살하라 영을 내리십시오. "

단종="누가 역모를 하였는지 나로선 알 길이 없소."

수양="간단합니다. 어명만 내리시면 다음 일은 신이 다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단종="숙부님이 알아서 처리하십시오. "

수양이 역적을 가리는 문제에 자신이 있었던 것은 한명회가 미리 작성해 놨던 '생살부(生殺簿)'때문이었다. 치밀한 시간계획, 우호세력과 적대세력과 중립세력의 엄밀한 구분, 과감한 행동과 순발력이 톱니처럼 맞물려야 성공할 수 있는 쿠데타에서 생살부는 없어선 안될 요소였다.

'살부(殺簿)'에 오른 영의정 황보인, 이조판서 조극관, 우찬성 이양 등이 왕명을 받고 부랴부랴 입궐하다 불귀의 객이 됐다. 한명회는 궁궐 문앞에서 생살부를 들고 살육의 현장을 지휘했다.

한명회는 수양대군과 함께 정난의 1등 공신으로 책정돼 논밭 2백결, 노비 25구 등을 하사받았다. 조선왕조실록은 그를 가리켜 "모사에 능하고 책략에 뛰어난 과단성있는 성품의 소유자"라고 평했다.

그런 한명회도 임금이 된 수양(세조)으로부터 역적이라는 의심을 받아 옥에 갇히고 국문을 당한 적이 있다. 즉위 이후 줄곧 권력불안에 시달리던 세조는 반란군 장수 이시애가 "한명회의 역모를 응징하기 위해 일어섰다"는 이간책을 쓰자 쉽게 속아 넘어갔다.

한명회는 죽은 뒤에도 연산군에 의해 관을 파내고 시체를 들어내 다시 죽이는 부관참시형을 당해야 했다.

생살부가 앞뒤 글자만 바꿔 요즘에도 '살생부'란 이름으로 세상을 떠돌고 있다. 조급증에 빠진 권력집단은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정적 제거 수단으로 살생부에 유혹을 느낄 수 있다.

살생부는 용어 자체에 폭력과 증오의 세계관이 배어 있다. 당장은 달지만 결국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정치세계를 황폐화시킨다는 점에서 반공동체적이다.

재미삼아 만들어 봤을 뿐인데 웬 난리냐는 네티즌이 있다면 그도 곧 언어의 마력을 실감할 것이다. 이미 그 장난은 정치권을 흔들어 놓고 있으며,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살생부의 자기파괴적 속성이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