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설날 아침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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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호 02면

#1.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설날 무렵 가장 많이 하고 또 듣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복(福)을 받고자 한다. 문제는 받기만 하려 한다는 것이다. 한국학 분야의 권위자인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는 “현대인들에게 행복은 선물이나 경품처럼 주어지기를 바라는 대상이 되어버렸다”고 한탄한다.
복을 그렇게 받기만 한다면 그 복이란 것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누군가는 복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불가(佛家)에서는 복을 받는 것보다 복을 짓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잡보장경(雜寶藏經』은 돈 안 들이고 복 짓는 법이 일곱 가지 있다고 전한다. 부드러운 얼굴로 베풀고(和顔施), 좋은 말씨로 베풀고(言辭施), 마음가짐을 좋게 해 베풀고(心施), 좋은 눈빛으로 베풀고(眼施), 지시할 때도 부드럽게 하고(指施), 앉을 자리를 배려해주고(狀座施), 쉴 만한 방을 내주는(房舍施) 것 등이다. 결국 ‘복이 나오는 밭(福田)’을 잘 가꿔야 복도 잘 받는다는 얘기다.

#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며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신약성경 마태복음 13장 12절 말씀이다. 1960년대 말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머턴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설명하면서 이 구절을 이용해 ‘마태 효과(Matthew effect)’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요즘 세태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머턴의 시각으로 이 문구를 보면 부자는 계속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는 계속 가난해진다는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이 공평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기독교인들은 물론 다르게 해석한다. 물질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믿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긍정의 힘을 강조한 베스트셀러 『시크릿』의 저자 론다 번은 조금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이 구절에는 숨겨진 문장이 있으며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말이라는 것이다. 사실 10절과 11절을 보면 ‘천국의 비밀’이 이 비유의 말씀 속에 감춰져 있음이 암시돼 있다. 번의 말대로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무릇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해지고 무릇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3. 설이다. 새해다. 새로운 해가 떴다. 하지만 경기 불황과 정치 불안에 유례없는 한파까지 겹쳐 세상살이가 팍팍하기 그지없게 느껴진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것인가.
해결의 단초는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스스로 복을 짓는 마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침 햇살에 눈을 뜰 수 있다는 것부터 감사하자. 사랑하는 식구들이 옆에 있음에 감사하고,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일이라도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 보자. 적어도 새해 첫날은 모름지기 그렇게 맞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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