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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는 괴로워" 폭로 공포증 시달려

중앙일보

입력

"얼마 전 내 생일 때 일이었어요. 남편이 제게 주려고 근처 꽃집에서 장미를 몇 송이 사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그날 밤 인터넷에 어떤 글이 떴는지 아세요? '배우 C씨가 바람이 났다. 어떤 여자에게 주려고 장미꽃을 사 가더라'라고 누군가가 올려놓은 거에요. 참 어이가 없어서…. 모든 사람이 다 가십기자들로 보여요."


"요즘은 어디가서 편하게 술한잔 먹기도 힘들어요. 웬만한 행동에도 각종 매체에 부풀려지거나 왜곡돼 알려지는 통에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예요. 이러다가는 몇년전 자동차를 타고 가다 파파라치에게 쫓겨 사망한 영국의 다이애나 비(妃) 같은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말란법도 없을겁니다."

스타는 괴로워-.

'추문(醜聞) ''불명예'등으로 번역되는 스캔들(scandal) . 최근 유명인들 특히 연예인들의 스캔들이 일상의 담론 속으로 점점 깊숙이 들어 오고 있다.

탤런트 황수정.가수 싸이의 마약 흡입과 같은 불법적인 행위는 물론이고 정사장면이 담긴 '누구누구의 비디오테이프' 누출 사건이나 심은하씨의 결혼설 소동 같은 사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가 연예인들의 스캔들로 채워지고 있다.

연예인과 그 가족들의 하소연에서 보듯이 요즘 연예인들의 사생활은 투명한 유리 속에 갇힌 모습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인터넷과 스포츠신문들의 과다 경쟁, TV의 연예 관련 프로 증가, 연예인 매니지먼트 사업의 거대화 등이 맞물리면서 이전보다 한층 가열되고 있다. 과거엔 주간지나 여성지등에서만 취급되던 연예인 스캔들이 이제는 인터넷 등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다뤄짐으로써 '리얼타임 가십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은 각종 스캔들이 양산되는 진원지다. 얼마 전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선발된 여성에 대해서는 중계가 끝난지 몇 시간도 안 돼 인터넷에 중.고등학교때 앨범 사진이 잇따라 올라와 '성형수술'여부로 온라인이 달구어지기도 했다.

최근 한 여성 탤런트는 호텔 커피숍에서 차를 한잔 마시고 나왔는데도 인터넷에 그날 바로 "재벌 2세와 사귄다""호텔에서 남자와 투숙하는 걸 봤다"는 글이 올라 혼비백산하기도 했다.

박성봉(서울대 강사) 씨는 "연예 산업은 저널리즘과 동전의 양면"이라면서 "연예 산업이 커 갈수록 가십문화도 더 극성스러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유럽은 타블로이드 신문이 일간으로 발행되는데 이들은 연예인 뿐 아니라 정치인.왕실 가족 등 유명인들의 동정을 흥미위주로 다룬다"면서 "한국의 경우는 스포츠신문이 그런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스타의 스캔들이 본격적으로 취급된 것은 역시 할리우드에서였다. 1926년 무성영화의 스타인 루돌프 발렌티노가 세상을 떠나자 수십명의 여성 팬들이 뒤따라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무렵을 전후해 할리우드의 대형영화사들은 배우가 대중들이 선호하는 하나의 상품이 된다는 걸 간파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계발했다.

당시는 배우들이 특정영화사와 전속 계약을 맺고 활동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영화사들은 자사 소속 배우들을 '띄우기'위해 스타의 전기(傳記) 를 조작해서 발간하는 등 '올림푸스의 신'으로 격상시키려는 시도를 반복했다. 이렇게 되자 팬클럽이 대거 생겨나고 이들을 위한 연예잡지들이 붐을 이뤘다. 전성기였던 1940년대에는 할리우드에 주재하는 가십전문 기자가 3백명을 넘을 정도였다.

이런 흐름의 정점에 있었던 스타가 마릴린 먼로와 엘비스 프레슬리였다. 전속시스팀이 사라지면서 과거처럼 영화사에 의한 의도적인 신화만들기는 사라졌으나 저널리즘에 의한 스캔들 캐기는 더 집요해졌다고 할 수 있다.

더스틴 호프만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가십문화에 포위된 연예인들의 상황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스타는 더 이상 죽을 수가 없다. 스타가 되는 순간 그는 저널리즘에 의해 죽은 뒤 방부처리되기 때문이다."

해방이후 한국에서 연예인 스캔들 제1호는 1946년 '자유만세'를 만들었던 최완규 감독이 그 영화에 출연했던 여배우와 벌였던 애정 행각이었다고 정종화(영화사료연구가) 씨는 주장한다.

정씨는 "1980년대 이전만 해도 억압적인 정치권력과 보수적인 사회분위기 때문에 스캔들이라고 해도 요즘 수준으로보면 로맨스였다"면서 "대중매체가 늘어나면서 스캔들을 다루는 방식도 점점 자극적으로 돼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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