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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 살았던 강진에 네덜란드 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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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우리나라를 서양에 처음 알린 『하멜 표류기』를 쓴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Hendrick Hamel, 1630~92)은 조선에 억류됐던 13년(1653~66년) 중 6년을 전남 강진에서 지냈다. 그가 머무른 전라병영성(全羅兵營城) 마을에는 네덜란드풍 유물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게 납작한 돌들을 15도 정도 눕혀 촘촘하게 쌓고 흙으로 고정시킨 후 다음 층은 반대 방향으로 15도 정도 눕혀 쌓는 담장. 이곳에는 하멜 기념관과 동상, 풍차도 있다.

 강진군은 병영면 지로리 하멜기념관 일대에 하멜촌을 조성하기 위해 군 관리계획의 주거지역를 유원지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는 7월께 설계에 들어가고 용지 보상을 병행해 이르면 올해 말 기반 조성 공사에 들어간다. 국비 90억원과 군비 60억원 등 150억원을 투입해 2016년까지 하멜촌 조성을 마친다고 계획을 잡았다.

 사업 부지는 전라병영성지 앞길 건너에 있는 하멜기념관 일대 4만2952㎡. 하멜 일행이 타고 제주도에 표착했을 당시의 상선인 스페르베르호(길이 36.6m, 높이 11m)를 실물처럼 건조해 바다에 떠 있는 것처럼 놓는다. 또 튤립으로 1만5000㎡ 크기의 정원을 만든다. 지금 있는 큰 풍차를 중심으로 작은 풍차를 여러 개 설치한다. 또 펜션 10~15동을 네덜란드의 옛 주거양식으로 지어 관광객에게 이국적이면서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박석환 강진군 문화관광과장은 “병영면의 ‘헨드릭 하멜과 네덜란드’라는 관광자원을 선점해 스토리텔링화하고 문화자원으로 개발·활용하려 한다. 전라병영성과 연계하면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라병영성은 전라도의 군수권을 통괄했던 병마절도사가 주둔하는 등 육군 지휘부 역할을 하던 곳. 지금의 광주광역시인 광산현(光山縣)에 있던 것을 조선 태종 17년(1417년) 성을 축조해 옮겼다. 성 안에는 백성이 아닌 군사들이 머물렀고, 하멜 일행이 억류돼 생활했다.

이해석 기자

◆헨드릭 하멜=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의 선원이자 서기였다. 총 64명이 1653년 1월 네덜란드에서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출발해 일본 나가사키(長崎)로 가던 중 그 해 8월 폭풍을 만나 제주도 산방산 앞 바다에서 좌초한다. 생존한 36명은 한양으로 끌려갔다가 1657년 33명이 병영성에 배치돼 잡역에 종사했다. 1663년 22명이 여수 좌수영으로 배치됐고, 1666년 하멜을 포함한 8명이 어선을 타고 탈출해 나가사키를 거쳐 고향을 떠난 지 13년 만인 1668년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하멜이 스페르베르호의 항해일지를 동인도회사에 제출했는데, 이 문서가 『하멜표류기』로 조선에서 체험한 것들을 상세히 기록했다. 하멜은 『조선왕국기』라는 책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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