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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이니 안전하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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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김수연
경제부문 기자

대탈출. 요즘 외신이 전하는 미국 금융시장 분위기다. ‘안전자산’ 채권에서 발을 빼려는 행렬이 이어진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아홉 달 만에 연 2%를 넘어섰다. 씨티그룹이 “보유 국채를 줄이라”는 긴급 보고서를 내는 등 금리 하락기가 끝나간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국은 조용한 편이다. 증시는 세계 증시와 따로 가고 채권에서의 자금 대탈출도 없다. 하지만 전문가는 시차가 있어도 결국 세계적인 추세를 거스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3년 국채 금리 2.78% 안팎, 기준금리가 한 번 더 인하된다고 해도 이미 역사적 저점에 가깝다. 지난해 4분기 30년 국채에 투자했던 이들은 손실이 크다. 지난해 9월 2억원을 투자했던 자산가는 넉 달 만에 1400만원의 평가손을 입었다. 지난해 개인 자산가 사이에 국채 투자 열기는 뜨거웠다. 석 달 만에 몇몇 대형 증권사는 30년 국채를 개인에게 3000억원 넘게 팔았다. 그때도 경고의 목소리는 꾸준히 나왔지만 묻혔다. 금리가 오르면(채권 가격 하락) 채권투자자는 손해를 본다. 만기가 길수록 변동폭은 더 커진다. 그럼에도 당시엔 금리가 내려가면 30년물 ‘단타’로 금세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점만 부각됐다.

 과거에도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금융사는 강하게 마케팅을 하고 투자자는 우르르 몰려갔던 일본펀드, 중국펀드, 물펀드, 베트남펀드 등은 지금 7~50%의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상품에는 공통적으로 글로벌 변수나 시장 상황에 대한 지나친 낙관과 무지가 깔려 있다. 투자자를 이끌어야 할 금융사는 은연중에 이런 오해와 무지를 부추겼다.

 금융상품에도 유행이 있다. 파는 쪽이 마케팅을 강하게 하면 소비자는 아무래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하지만 유행을 좇다 생긴 손실은 투자자 몫이다. 오래 묻어둔다고 무조건 수익이 나는 것도 아니고, 채권이라고 다 안전하지도 않다. 단기차익을 노리고 국채를 사면서, 또는 권하면서 ‘채권이니 안전하다’고 말하는 건 난센스일 뿐이다.

김수연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