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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영의 독서 칼럼] 누가 더 불량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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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보다 부전공으로 더 유명한 사람들이 있다. 그중의 하나로 노엄 촘스키가 생각나는데, 내 무지의 폭로가 아니라면 그에게는 대단한 결례가 되리라. 그의 전공 '생성 언어학'은 그 방면에 가위 이정표가 될 만한 업적이란다.

언어는 논리나 경험의 산물이 아니고, 이성의 구도를 실현하는 능력이라는 한참 어려운 그의 이론은 그냥 넘어가자. 무식은 죄가 아니지 않은가? 이런 고백이 특별히 부끄러울 것도 없으니, 유수의 언어학 학술지들조차 그의 학위 논문 게재에 퇴짜를 놓았다니 말이다. 물론 1950년대의 해프닝이었다.

*** 우리가 미칠 수도 있으니

반세기가 지난 오늘 그의 글이 여전히 퇴짜를 맞는지 어떤지 나로서는 아는 바 없다. 다만 그의 독자들이 엄청난 것이 사실인데, 유감이든 다행이든 그것은 그의 부전공 '정치 비판' 때문이다.

촘스키의 책이 우리 사회에 꾸준히 소개되는 현상을 나는 유감 아닌 다행으로 생각한다. 글쎄 투표에 부치면 다행보다 유감으로 생각할 사람이 더 많을지 모르겠다. 이런 지레짐작은 그의 저서 『불량 국??두레.2001) 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예전 같으면 불온 서적에다 반미(反美) 혐의까지 합쳐 공안 당국이 치도곤을 안겼을 텐데, 출판사나 독자가 무사한(!) 것을 보면 세월이 많이 좋아진(?) 모양이다.

불량 국가의 족보는 둘로 나뉜다. 그 하나는 상대를 궁지를 몰아넣기 위해 억지로 갖다 붙인 딱지로서, 이때 대상이 불량한지 선량한지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컨대 '선량한 불량 국가'로는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썰렁한 이유로 40년간 경제 봉쇄를 당하는 쿠바가 꼽힌다. 소련 붕괴 이후 쿠바 금수(禁輸) 는 오히려 더 가혹해졌는데, 그것은 "미국을 교살하려는 소련이란 짐승의 촉수" 쿠바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의 사랑"(1백56쪽) 으로 명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반면 '불량한 불량 국가'에는 수하르토 치하의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제삼세계의 독재 정부들이 들어간다. 그들 대부분은 한때 미국의 하수인이었다가 용도 폐기된 정권이므로, 문제는 "그들이 저지른 범죄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미국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사실"(11쪽) 에 있다.

촘스키의 관심은 이런 '상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불량 국가에 대한 다른 하나의 족보로 자신의 힘을 믿고 멋대로 세계 질서를 어기는 나라들이 있다. 여기 미국과 그의 짝패 영국이 속한다.

미국이 불량 국가라고□ 아이고머니, 이를 어쩐다. 미리 알았으면 읽지나 말 것을! 주먹과 광기는 그 불량한 힘을 표출하는 적나라한 수단이다.

이를테면 "강력한 힘의 그림자가 협상 테이블에 드리워지지 않는다면 협상이란 용어는 그저 미사여구에 불과하다"(33쪽) 는 슐츠 국무장관의 발언이나, 미국의 적들이 "우리가 미칠 수도 있고, 예측이 불가능하며,가공할 파괴력을 구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겁에 질려 우리의 요구에 복종하도록 해야"(39쪽) 한다는 닉슨 대통령의 '미치광이 이론'이 그러하다.

아무튼 "모든 나라가 국제법에 복종해야 한다고 규정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유일한 국가"(74쪽) 라는 점에서 미국은 불량 국가로의 피소(被訴) 를 면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런 판에 수틀리면 상대방을 불량 국가로 지목하고 '억울하면 덤벼봐' 식의 도발 행위는 그야말로 적반하장에 유만부동이다.

이어 촘스키는 두 족보의 관계를 추적한다. 이라크의 후세인이나, 니카라과의 소모사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인종 청소' 따위의 온갖 악행을 자행할 때 미국은 그들의 불량 행위를 적극 교사하거나 최소한 방조했었다.

그리고 나서 안면을 바꿔 그들의 불량성을 성토하는 미국의 '오리발' 행위야말로 한층 더 불량하다는 것이 저자의 고발이다.

세계는 자유로워야 하지만 그 "자유롭다는 것이 미국이 바라는 대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기"(3백26쪽) 때문에 미국의 자유는 항상 상대의 구속으로 전가된다.

그래서 그는 "미국의 군사 원조와 원조 수혜국의 인권 유린 사이에는 잘 확립되고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상호 연관성이 있다"(1백11쪽) 고 단언한다.

*** 군사 원조가 인권 유린으로

이 책은 미국의 대외 범죄 열전이 아니며, 촘스키 역시 고발과 비판으로 유명세를 노리는 학자가 아니다. 종종 그에게 아나키스트라는 명패가 따르지만, 인권과 정의와 평화가 '18번'일 만큼 그의 관심은 아주 고전적이다.

제2차 대전 이후의 세계 질서를 떠받치는 세 기둥으로 그는 세계인권선언과 유엔헌장과 브레턴우즈 체제를 든다.

세계인권선언은 미국 정부가 야유하듯 "산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1백93쪽) 가 아니고, 브레턴우즈 체제는 최소한 금융 투기를 규제한 점에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향한 강력한 무기였다는 것이다.

책을 덮을 때까지 마음 졸인 일이 있다. 국무부의 불량 국가 리스트에 단골로 오르는 북한이 촘스키 리스트에는 빠졌다. 나는 안도했지만 분개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정운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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