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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낙마 … 밀봉인사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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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회의실에서 열린 법질서사회안전분과 업무보고에 참석해 안경을 벗고 생각에 잠겨 있다. 김 후보자는 이 회의에 참석한 지 4시간여 만인 이날 오후 7시 총리 후보직을 사퇴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29일 전격 사퇴했다. 지난 24일 총리에 지명된 지 5일 만이다. 법관 재직 중의 부동산 투기 의혹, 두 아들의 병역 기피 의혹 등이 제기된 상황에서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후보직을 내려놓았다. 새 정부 초대 총리 후보자가 자진 사퇴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이다.

 ‘밀봉 인사’라는 비판을 받으며 김 후보자를 지명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됐다. 27일밖에 남지 않은 새 정부 출범 작업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원점에서부터 새 총리 후보자를 물색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 데다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 및 장관 인선 작업도 시간에 쫓기게 됐다.

 김 후보자는 이날 박 당선인이 아웅산 수치 미얀마 의원을 면담한 직후인 오후 2시30분쯤 박 당선인과 단독 면담을 갖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박 당선인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어 김 후보자는 오후 6시8분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에게 결심을 전했고, 윤 대변인은 오후 7시 김 후보자의 사퇴 소식을 발표했다.

 김 후보자는 “저의 부덕의 소치로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 드리고, 박 당선인에게도 누를 끼쳐 드려 국무총리 후보자직을 사퇴하기로 결심했다”고 윤 대변인을 통해 밝혔다. 그는 “언론 기관에 부탁드리고 싶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보도라도 상대방의 인격을 최소한 존중하면서 확실한 근거가 있는 기사로 비판하는 풍토가 조성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해 최근 언론의 검증 보도에 불만을 보이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인수위원장직까지 사퇴할 것인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윤 대변인은 “(인수위원장직 유지 여부도) 당선인의 결심에 따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총리 지명 5일 만에 이뤄진 김 후보자의 퇴진은 박 당선인의 ‘밀봉 인사’ 스타일이 빚은 ‘부실 검증’이 원인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박 당선인은 ‘법치·도덕성, 약자에 대한 배려’를 김 후보자 지명 이유로 들었지만 총리 지명 다음 날인 25일부터 8세·6세 아들에 대한 강남 땅 편법 증여 의혹, 부장판사 시절(1970~80년대) 수도권 땅 집중 매입 의혹 등이 불거졌다. 두 아들이 모두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사실은 최소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에 위배된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 중 부동산 문제는 등기부등본 등만 확인해도 체크될 수 있는 사안이다. 박 당선인 측이 제대로 사실관계를 따져보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박 당선인 측이 청와대와 행정안전부 등에 김 후보자 검증 자료를 요청하지 않았다. 보안을 중시하는 박 당선인이 사실상 독자적인 검증 절차를 거쳐 지명한 것이다.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는 “박 당선인은 나 홀로 집에서 수첩에 의존하는 인사를 하지 말고 시스템으로 검증하는 인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신용호·손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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