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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깊어진 朴, 농담 건네던 평소와 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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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박근혜 당선인의 첫 인선이 어그러졌다. 가장 주목받던 첫 작품이 실패로 결론 나면서 박 당선인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그는 29일 오후 인수위 법질서사회안전분과의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큰 웃음 한 번 짓지 않았다고 한다. 평소 간간이 농담을 하면서 분위기를 주도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인수위 한 관계자는 “박 당선인이 김 후보자의 검증 문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번지면서 내심 당황스러워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첫 단추가 어긋나면서 박 당선인의 국정 구상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총리 후보자 지명 후 인수위의 분과별 업무보고를 직접 챙기며 정책 구상을 구체화해갔지만 원점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당장 급한 게 후임 인선이다. 정부 출범까지 한 달도 안 남았지만 차기 총리감을 고르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애초 야당으로부터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은 김 후보자조차 예상치 못했던 두 아들의 병역 면제와 부적절한 재산 증식 의혹으로 낙마했다. 그런 만큼 적절한 후보자를 찾기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가 총리 후보자 지명 후 닷새 만에 언론의 검증을 넘지 못하고 불명예 낙마하는 과정을 보면서 손사래를 칠 인사들이 더 늘어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그렇다고 박근혜 정부의 첫 총리를 ‘청문회 통과가 가능한 인사들’로 한정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대선 때부터 공약해온 책임총리제와 대통합이란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박 당선인의 비전을 공유하면서도 사사건건 대립하지 않고, 국정의 흐름을 파악하고 장관들을 장악할 만한 인물을 찾아야 한다. 실제 박 당선인은 총리실에 차관 자리(비서실장)를 한 명 더 늘리면서 총리의 무게를 실어놓은 상태다.

 여권 내에선 박 당선인이 인선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 후보자가 낙마하게 된 데는 극도의 보안 속에 진행된 ‘밀봉 인사’의 부작용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측근은 물론 황우여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지도부도 발표 당일에야 통보받았을 정도다. 이런 탓에 두 아들의 병역이나 재산 등 가장 기본이 되는 검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인수위 주변에선 김 후보자가 헌법재판소장을 맡을 당시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것으로 착각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총리부터 장관까지 인사청문회 대상자를 줄줄이 인선해야 하는 상태에서 이 같은 보안 우선주의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많다. 제대로 된 검증을 하기 위해선 청와대·국정원·행정안전부·국세청 등 현 정부의 인사검증 시스템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날 이명박 대통령이 단행한 특별사면으로 신·구 권력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어서 현 정부의 검증 시스템을 활용하는 게 껄끄러워진 셈이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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