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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업체에 판촉·인테리어비 떠넘기기 … ‘갑’ 관행에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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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가면 열심히 신제품을 권유하는 판촉사원을 흔히 볼 수 있다. 고객들은 이들을 백화점·대형마트에서 직접 고용한 직원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판촉사원의 상당수는 ‘갑’의 우월적 지위에 있는 백화점·대형마트의 강요에 못 이겨 ‘을’의 입장인 납품업체들이 파견한 사람들이란 게 공정거래위원회의 설명이다.

 공정위는 29일 판촉사원의 인건비를 납품업체에 떠넘기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 등을 담은 ‘유통분야 거래 공정화 추진방향’을 내놨다. 김석호 공정위 기업협력국장은 “현행 규정을 전면 재검토해 대형 유통업체들이 납품업체의 의사에 어긋나는 판촉사원 파견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위법 소지가 있는 사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도 만들어 불법 파견을 방지하겠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새 정부가 출범하는 2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해 가급적 연내에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최근 인수위원회 회의에서 백화점 등에 납품하는 중소업체들의 애로 해결을 주문했다. 박 당선인은 “납품업체 사장을 만났는데 백화점이 판매 수수료를 너무 많이 떼 가고 판촉 행사비와 광고비도 전부 전가해 이중·삼중고를 겪고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대형 유통업체의 불공정 행위가 악의적·조직적·반복적으로 이뤄진 경우엔 법인은 물론 책임이 있는 개인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강조했다. 최고경영자(CEO)도 위법 행위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 고발 대상에 포함된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현행법에는 공정거래 관련 위법 행위에 대해선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형사 처벌을 할 수 있다.

 공정위는 백화점 등에서 인테리어 비용을 납품업체에 떠넘기는 행위도 집중 감시하기로 했다.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백화점과 납품업체가 나눠서 부담하도록 의무화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잦은 매장 위치 변경으로 생기는 인테리어 비용 부담은 백화점이 대부분 책임지고, 납품업체의 부담은 최소한으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대형마트가 겉으로는 납품단가를 무리하게 깎지 않겠다고 하면서 각종 판매장려금 명목으로 납품업체로부터 돈을 받는 행위도 심각한 문제라고 공정위는 지적했다. 한 대형마트의 경우 100원어치 물건을 팔면 납품업체에서 9.9원의 판매장려금을 받아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송정원 공정위 유통거래과장은 “원래 판매장려금의 취지는 유통업체의 판매 노력에 대한 보상이지만 실제로는 (수수료 성격으로) 많이 변질됐다”며 “특히 판매 성과에 관계없이 일정 비율을 부과하는 기본·폐점장려금 등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백화점·대형마트 등 유통업계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일부 항목은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판촉사원 운영 규제는 상품 홍보 창구가 부족한 중소 제조업체의 매출 감소로 이어져 결국 제품 가격 상승과 일자리 축소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납품업체 관계자는 “판매 수수료 등과 관련한 불공정 행위가 시정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자칫 거래 자체를 끊어버리는 부작용을 불러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세종=주정완 기자,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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