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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재판 6회 … ‘군수들 무덤’ 임실에 무슨 일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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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북 임실군은 민선단체장들이 줄줄이 사법처리를 당해 ‘군수들의 무덤’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곳이다. 2010년 취임한 강완묵(54) 군수도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돈 문제로 기소됐다. 강 군수는 두 차례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포함한 ‘핑퐁 재판’으로 지난 2년 내내 법정에 서고 있다. 똑같은 사건이 1심→2심→대법→고법→대법→고법을 오가며 최종판단을 기다리는 동안 강 군수는 30차례 가까이 공판에 출두했다. 강 군수가 선임한 변호사만도 전직 대법관을 포함, 20명에 이른다. 군수가 재판에 매달리는 바람에 군 행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지적이 군민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자신의 재산액수를 ‘마이너스 3000만원’이라고 신고한 강 군수가 거물급 변호사 선임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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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의 발단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 군수는 6·2 지방선거를 한 달쯤 앞두고 건설업자로부터 84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이듬해 1월 기소돼 1심과 2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뇌물이 아니라 선거자금으로 빌린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무죄 취지로 판결을 내렸다. 두 달 뒤 광주고법 재판부는 “차용금이라 해도 회계처리가 적법하지 않았다”며 강 군수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정치자금법상 벌금 100만원 이상이면 군수직을 잃게 된다. 강 군수는 다시 상고했고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또다시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강 군수는 그동안 화우·태평양 등 5개 법무법인에 변론을 의뢰했다. 또 검찰 수사와 1·2·3심 등 단계마다 지역에서 전관예우를 받는 유명 변호사들을 선임했다. 대법원 상고심을 앞두고는 대법관 출신 이홍훈 변호사를 선임했다. 최근 여섯 번째 판결을 앞두고 추가 선임된 광주지역 변호사는 담당 판사와 사법연수원 동기로 알려져 있다. 전북 지역의 한 변호사는 “같은 사건에 두 차례씩 고법과 대법원의 판결이 다른 것도 잘 이해가 안 되지만 단일 사건에 20명의 변호인이 선임되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군수직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 군수가 2년간 법정을 오가며 재판을 받느라 지자체의 살림살이에 영향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 최대 현안인 향토사단 이전사업은 1년째 표류하고 있어 농민들은 거의 매일 군청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중앙정부로부터 확보한 예산증가율도 전북도 내 14개 지자체 중 꼴찌다.

 임실군에서는 지금까지 민선군수들이 모두 사법처리를 당했다. 민선 초대 이형로 군수는 쓰레기매립장 부지 조성과 관련해 건설업체 부탁을 받고 서류를 임의로 꾸며준 혐의로 벌금형을 받아 중도하차했다. 그는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뒤를 이어 이철규 군수와 김진억 군수도 인사 청탁 또는 공사 민원과 관련해 돈을 받고 구속됐다.

 임실군민들은 강 군수가 변호사 비용을 어디서 댈까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농민운동가 출신인 강 군수는 2010년 지방선거 때 재산보다 빚이 더 많다고 신고했다. 검찰이 1심 판결에 따라 추징금(8400만원) 환수에 나섰다가 재산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자 급여 압류를 신청하기도 했다. 강 군수 측은 “선임계만 내놓은 분도 있어 실제 활동하는 변호사는 훨씬 적다”며 “비용은 대출과 친지들의 도움으로 마련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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