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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손놀림 보자고 방송국이 날 ‘납치’하기도 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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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춤 인생 80년을 맞은 조갑녀 명인은 “속멋이 있어야 한다”며 4시간에 걸쳐 머리를 빗고 한복을 입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세상이 불러낸 춤. 춤꾼이 아닌 생활인이 되고자 했지만 결국 버리지 못한 춤. 조선의 마지막 춤꾼 조갑녀(90)씨가 데뷔 80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서울교방은 올 가을 조씨의 춤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전문 춤꾼 70여 명으로 꾸려진 서울교방은 조씨를 비롯해 장금도(84) 명인 등 교방(敎坊) 예인의 맥을 잇기 위해 2010년 만들어진 단체다.

 “춤은 이 속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여.”

 24일 서울 관악구 남현동 주택에서 만난 조씨는 왼손으로 가슴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서울 남산 국악당에서 췄던 마지막 춤에 대해선 “요즘 통 기억이 없다니께”라고 했다.

 그 춤은 지난해 12월 5일 소리꾼 장사익(64)의 공연에서 선보였다. 주한 외교사절 300여 명을 초대한 자리였다. 마이크를 잡은 장씨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춤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춤을 보실 거다”며 조씨를 소개했다. 휠체어를 탄 채 무대에 오른 조씨는 1분 동안 민살풀이를 췄다. 허리는 굽었고 다리엔 힘이 빠져 제대로 서있지 못했지만 손목만은 하늘거렸다. 공연 뒤 짧은 정적, 그리고 관객들은 조씨의 마지막 무대에 기립박수를 보냈다. 눈물을 닦는 관객도 숱했다.

 조씨의 아버지는 전북 남원시 권번(券番)에서 악기연주를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다. 그런 연유로 어려서부터 판소리와 춤·기악을 배웠다. 아홉 살 무렵 조선 궁중무의 마지막 명인 이장선(1866~1939)을 만나 춤을 배웠다. 이씨는 종9품 참봉(參奉)을 지낸 명인이었다. 그는 “네 몸에는 춤이 들어있구나”라며 조씨의 끼를 알아봤다.

조갑녀 명인이 손바느질로 만든 버선. 춤을 추는데 적당하도록 앞부리가 두터운 게 특징이다.

 자신의 춤을 선보인 건 1933년 열린 제3회 춘향제에서다. 당시 열 살, 참가자 중 가장 어렸다. 이듬해 열린 제4회 행사에선 혼자 무대에 올라 승무를 췄고 관중들의 찬사를 받았다. 열두 살에 명무(名舞)라는 칭호를 얻게 됐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열아홉에 전북에서 돈 많기로 손꼽히던 한성물산 사장 정종식과 결혼을 하면서 춤판을 떠났다.

 “애기들 때문에 그만뒀소. 밥도 짓고 애기들도 기르는 생활인이 되는 게 꿈이었소. 지금은 모르겄지만 그때는 춤 춘다고 하면 다들 (기생이라고) 손가락질 하고 그랬다니께.”

 춤은 가뭇없이 사라졌고 그 동안 전처 사이에 난 4명을 포함해 12명의 자식을 키워냈다. “춤을 추면 사람들이 기생으로 볼 것 같아 한동안 애들 돌보는 게 내 일이었소.”

 세상은 조씨를 다시 불러냈다. 조씨가 춤사위를 다시 선보인 건 71년 7월. 남원시 광한루에 완월정(玩月亭)이 완공돼 어느 때보다 춘향제가 성대하게 열린 해다. 동네 유지들이 남편을 설득했고 남편은 조씨를 설득해 30분간 승무를 췄다. 76년 춘향제에서 민살풀이를 춘 게 마지막이었다. 이후 2007년 서울세계무용축제까지 31년간 마음속에 춤을 묻었다. 문화재청도 신문기자도 조씨를 찾아왔지만 맨손으로 돌아갔다. 한 방송사는 민살풀이춤을 찍기 위해 남원에서 조씨를 납치하다시피 차에 태워 서울로 끌고 간 적도 있다. 78년 일이다. 조씨는 “(춤은) 내가 추고 잡아서 췄지. 그게 시킨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여”라고 했다.

 살풀이춤은 하늘에 하얀 수건을 뿌려 살(殺)과 액(厄)을 막지만 조씨가 추는 민살풀이는 맨손으로 춤춘다. 명주 수건은 사나운 운수를 내치지만 맨손은 내치기보단 보듬고 달래며 모진 기운을 풀어준다. 그래서 무겁게 춰야 한다.

 장사익은 “조 선생님은 늘 춤을 추고 있는 분이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 선생님의 춤은 독도와 닮았다. 바다 위로는 작은 바위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울릉도처럼 큰 바위가 있는 그런 춤”이라고 했다.

 조씨의 춤은 광장에서 빙 둘러 보던 것이라 무대와 관객이 수평으로 만나는 서양식 무대에선 그의 옆 모습만 보인다. 팔자도 정자도 아닌 비정비팔(非丁非八) 모양의 발 배치 때문이다. 조씨는 “그래야 허리에 힘이 들어가고 단전이 서는 법”이라고 했다.

 한 번 몸에 들어온 춤은 떠나지 않는다. 의자에 앉아 있던 조씨가 다리를 꼬았다. 마치 하나의 춤사위를 보는 것 같았다. 무릎에 힘이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사뿐했다.

 “장단 공부를 꿰뚫었으면 그 다음에는 니 마음대로 춰라. 하지만 반드시 무겁게. 그러면 천하의 가락도 두려울 것이 없다.”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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